[주말매거진 OFF] 강릉 겨울바다 여행

▲ 강릉 안목 커피거리의 야경
▲ 강릉 안목 커피거리의 야경
▲ 정동진의 일출
▲ 정동진의 일출


#장면 1=톡 건드리면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쾌청한 겨울날이다.밤새 내린 눈이 경포호 주변에 소복이 쌓여 주위가 온통 은색이다.호수의 푸른 물결 위에도 점점이 흰눈이 박혔다.그런데 자세히 보니 눈이 아니다.설산(雪山)의 눈빛을 닮은 듯 온통 하얀색 몸통에 기나긴 목을 가진 녀석들이 유유히 물결을 헤치며 물놀이 삼매경에 빠졌다.달음질치듯 수면을 박찬 뒤 몸집 보다 훨씬 큰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때는 발레리나가 발목을 한껏 곧추세우고 춤 추듯 우아하다.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녀석들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보호되고 있는 ‘큰 고니’ 이다.

#장면 2=흰 파도 포말이 쉴새없이 부서지는 바닷가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커피 전문점이 즐비하다.마치 해외의 유명 관광지를 찾은 것 같은 분위기의 개인 카페부터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들까지 각양각색의 커피 전문점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커피마니아들의 ‘성지’로 통하는 강릉 ‘안목 커피거리’이다.울릉도·독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 주변으로 빨간 등대와 은모래 백사장이 한폭의 그림을 걸어놓은 듯 펼쳐진다.

#장면 3=지름 8.06m,폭 3.2m,무게 40t에 달하는 모래시계가 원형의 거대한 몸집을 돌려 회전한다.모래시계가 회전하면서 새해 1월 1일 0시가 됐다.때 맞춰 휘황찬란한 불꽃이 차디찬 겨울 밤하늘을 수놓는다.수도 서울의 정동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강릉 ‘정동진’의 해넘이·해맞이는 이 처럼 격동적이다.모래 무게만 8t이나 되는 정동진 모래시계는 지난 2000년 새천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동해안의 대표적인 새해 해맞이 상징물이다.같은 시간 동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경포해변에서도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밝힌다.새해 첫해가 수평선을 박차고 솟아오르면 백사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명의 인파가 환호하고 두손을 모은다.

세 장면은 겨울바다의 고장,강릉에서 매년 연말연시에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이다.

흔히들 겨울을 ‘동면의 계절’ 이라고 일컫지만,강릉의 겨울은 반대로 ‘역동의 계절’이다.살을 에는 맹추위에 뭇 생명체가 너나없이 몸을 움츠리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때,강릉은 오히려 기지개를 켜고 겨울 속으로 뛰어드는 희한한 곳이다.

강릉이라고 해서 북풍한설이 피해갈리 없지만,바닷가 백사장에는 세찬 파도를 벗삼아 나만의 여유를 즐기려는 낭만파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떠들썩하고 흐트러진 여름이 마뜩지 않아 모두가 잠드는 때를 기다려온 ‘겨울 바라기’ 들에게 강릉의 겨울바다는 말 그대로 이상향이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닷가와 경포호수,남대천과 연곡천 하구 등에는 시베리아 동토(凍土)를 피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철새들의 힘찬 자맥질이 잠든 겨울을 깨운다.철새는 하늘길 수만리를 비행해 겨울 안식처인 강릉에 여장을 풀었고,여행자 또한 설레는 가슴 안고 저 높은 대관령 고갯길을 넘어왔으니 둘 다 동병상련이다.

▲ 경포호에서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 큰고니. 사진제공/강릉시청 환경과 박효재 주무관
▲ 경포호에서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 큰고니. 사진제공/강릉시청 환경과 박효재 주무관

겨울철 강릉의 하천 하구와 경포호,바닷가는 철새 전시장을 방불케한다.기러기류,오리류,고니류,맹금류 등이 앞다퉈 날아든다.큰고니와 흰꼬리수리를 비롯 고방오리,쇠오리,청둥오리,흰죽지,검은머리흰죽지,청머리오리,뿔논병아리,큰기러기,쇠기러기,말똥가리 등등.이름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로 강릉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 진객’들은 다양하기 이를데없다.예전에 농경지로 만들었던 경포호 주변을 습지로 되돌리는 ‘가시연 습지’와 ‘순포 습지’ 복원사업이 최근 들어 결실을 거두면서 철새들의 서식 마당은 더욱 확대됐다.

강릉시청 환경과 박효재 주무관은 “호수와 하천은 물론 바다를 무대로 하는 여러종의 철새를 조수 간만의 차이가 없는 바닷가에서 가까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겨울 탐조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며 “사천해변과 주문진항,영진항,강릉항 등 바닷가 전체가 탐조 포인트”라고 말했다.

철새들이 노니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그윽한 커피향 또한 겨울바다 여행의 매혹을 더한다.강릉은 커피 산지가 아니면서도 어느 순간 대한민국 ‘커피 성지’로 등극한 유별난 곳이니 커피를 잘 모르는 여행자도 이곳에서는 커피 예찬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동해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울릉도·독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접안하는 강릉항 주변에는 커피도시의 유명세를 대변하는 ‘안목 커피거리’가 자리잡고 있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거리는 원래 1980년대 ‘자판기 거리’에서 출발했다.지금은 내로라하는 커피 전문점들이 즐비하지만,40년 전 당시 안목해변은 한적하기 이를데없는 작은 어촌이었다.외로운 어촌의 바닷가를 지킨 것은 고기잡이 배 보다 더 많은 자판기였고,여행자들은 커피,크림,설탕의 비율이 저마다 다른 자판기에서 입맛에 맞는 맞춤형 커피를 뽑아들고 호젓한 바닷가에서 ‘길 다방’의 풍미를 즐겼다.그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의 한장면 처럼 입소문을 탄 곳이 이제는 커피전문점들이 즐비한 우리나라 대표 커피명소가 되고,‘한국 관광의 별’과 ‘한국 관광 100선’에 잇따라 이름을 올리면서 ‘커피도시’ 강릉의 탄생을 알렸으니 안목 커피거리의 변신은 시쳇말로 ‘대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돌이켜보면 강릉이라는 도시가 그 옛날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차(茶)를 덖어 마신 우리나라 차 문화의 발상지 가운데 한곳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커피도시 브랜드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다.강릉은 안목 커피거리 뿐만 아니라 시내와 바닷가,산간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자신만의 노하우로 원두를 볶아내고,커피를 내리는 전문점들이 수백곳에 달한다.

강릉의 겨울은 또한 기원과 다짐이 넘치는 계절이다.저물어가는 한해를 마무리하고,새해 새희망을 설계하려는 남녀노소,선남선녀들이 전국 곳곳에서 천리길 수고를 마다않고 꼬리를 물고 대관령을 넘어 온다.‘기해년’ 묵은해를 보내고,‘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는 오는 12월 31일∼1월 1일에도 경포와 정동진 등 곳곳에서 해넘이·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강릉시는 다가오는 새아침에도 40여만명이 해맞이를 위해 몰려들 것으로 보고 공연과 불꽃놀이,소원등 달기,포토존 등의 다양한 즐길거리 마당을 준비중이다.더 나아가 강릉 해맞이 여행은 종합선물세트 꾸러미를 풀어헤치는 여행길이다.서울∼강릉을 최단시간에 연결하는 KTX 강릉선 고속열차 개통과 함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강릉 도심의 전통시장과 맛집,문화·관광명소들이 ‘인증샷’을 위해 대문을 활짝 열었다. 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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