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데뷔한 그는 시대를 앞서간 독특한 퍼포먼스와 낯선 노랫말,서툰 한국어 실력이 겹치면서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1년만에 연예계를 떠나야 했다.데뷔 앨범인 ‘리베카’에는 ‘가나다라마바사’,‘Dance with me 아가씨’ 등 재미교포답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뉴 잭 스윙’ 스타일의 노래를 선보이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당시 국내 정서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네게 비자갱신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것”이란 막말을 들었고,서울 대학로 야외무대에서는 돌에 맞을 정도로 ‘다름’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8년뒤인 2000년 혼성 그룹 V2로 컴백했지만 인지도 부족과 소속사의 부당 계약 등이 겹치면서 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레스토랑 서빙일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탑골 GD’로 알려지더니 롤러코스터처럼 극적인 반전을 이룬 것은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다.30년전 긴 머리와 화려한 패션을 한 중성적인 외모의 그가 부른 노래는 이해하기 힘든 춤과 가사였지만 한세기가 지난 2019년에는 독특한 퍼포먼스와 신선한 사운드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JTBC 손석희 앵커는 ‘앵커 브리핑’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하거나,아예 견고한 벽을 쌓아버리는 사회.가혹했던 그 시절 탓에 몸짓과 손짓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가수는 삼십 년이란 시간 동안 묻혀 지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혐오와 차별을 넘어 우리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떠오르는 이가 가수 양준일이다.그가 밥 딜런에게 가려진 로드리게스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에 가려졌던 ‘양준일’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평등하게 사는 ‘시대의 아이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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