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세우기 세미나
51명 중 29명만 국가 인정
서훈 전수조사 필요성 강조

▲ 홍천문화원 주최 3·1만세운동 100주년 맞이 역사인식 바로세우기 세미나가 30일 문화원에서 열렸다.
▲ 홍천문화원 주최 3·1만세운동 100주년 맞이 역사인식 바로세우기 세미나가 30일 문화원에서 열렸다.

[강원도민일보 권재혁 기자]홍천의 3·1만세 운동이 도내에서 가장 치열했는데도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이 많아 역사적 재조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30일 홍천문화원(원장 박주선) 주최로 열린 3.1만세운동 100주년 맞이 역사인식 바로세우기 세미나에서 춘천 역사문화연구회 오동철 사무국장은 “홍천군에서는 최소 13명 이상이 3·1만세운동 현장에서 사망했거나 부상 후 며칠 내 사망해 도내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사망자 3명은 인적사항이 없어 서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또 “일본군 헌병대 자료에도 홍천은 최소 사망 12명,부상 6명,피검자 33명 등 51명인데도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29명에 그쳤고,재판을 받거나 수감이 확인된 사람 중에도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6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오 국장은 “물걸리의 현장 사망자 서훈은 훈장 5단계 중 4단계인 애국장”이라며 “명망을 자산으로 높은 공적을 받은 독립유공자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홍천 3·1만세운동은 서울서 전파돼 4월1일(장날) 시작해 3일 정점을 찍었고,수천여 명이 참여했다.그중 8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수십 명이 검거된 기록이 있는 내촌이 가장 치열했다.물걸리 3.1만세운동은 추가 연구에 따라 전국적인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강대덕 윤희순 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은 “일본 자료를 통해 본 홍천 3.1만세운동은 천도교·기독교·유교세력이 무종교 토착세력과 연합해 자주적으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했다. 권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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