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Life]인생 2막 여는 베이비부머
원주 육민관고 동창 4명 한자리
수십년 직업 마무리 후 새출발
“의지 있다면 어떤 일 하던 행복
과거 아닌 앞으로의 삶 더 중요”

형제,자매가 많아 밥상에서부터 경쟁이 심했다.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고,사회에 나가서도 경쟁을 하며 늘 좁은 문을 지나야 했다.그래도 경제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으로 불렸다.IMF 한파가 몰아칠 때는 가정을 지켜냈다.한국전쟁 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다.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져 하나둘 은퇴를 맞는 그들이지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퇴장은 없다.다시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가 인생 2막을 열고 있다.세밑 원주의 한 삼겹살 가게에 모여 회포를 푼 원주 육민관고 59년생 동창 4명의 속깊은 이야기를 통해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애환과 고민,그리고 식지 않은 열정을 들여다봤다.

▲ 육민관고 59년생 동창 4명이  한 식당에서 만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송년회를 하고 있다.  방병호
▲ 육민관고 59년생 동창 4명이 한 식당에서 만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송년회를 하고 있다. 방병호

이들의 화두는 단연 새 일터에서 좌충우돌하며 겪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18년 전 중령으로 예편한 뒤 건설업,유통업을 거쳐 가스충전소와 대리운전,자재창고 관리까지 경험한 김진환씨가 먼저 입을 뗐다.김씨는 “가스충전소에서 일을 하면서 손님들이 나를 사장님인 줄 알고 나오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자꾸 듣자 사장이 자동세차장 업무로 보직을 바꿨다”며 “그렇게 6개월을 근무하다 나이가 있다보니 잘렸던 기억이 난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자재창고 관리감독을 할 때는 120만원 봉급에 야간근무를 서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던 적도 있다”며 술잔을 기울였다.38년간의 공직생활을 지난해 6월 마감하고 원주시고충처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응만씨는 “퇴직 이전엔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하면 됐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더 바쁜 삶을 보내고 있다.백수가 과로사 한다라며 웃던 어느 형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말을 보탰다.

2020010401010001713.jpg

김진환씨
현실에 좌절하기 보다
나이 들어도 꿈 가져야

윤석진씨
최선 다해 살아온 시간
지나온 삶 후회없어

강응만씨
요즘 하고싶은 일 하며
더 바쁜 시간 보내

박종배씨
하려는 의지 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

이들은 모일 때마다 늘 그렇듯 옛 추억을 더듬으며 술잔을 기울였다.윤석진씨는 국민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중견기업에 들어가 10여년 일하다가 스카웃 제의를 받고 전직을 했지만 IMF 사태로 무작정 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인생 60년에 이모작을 논하기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후회는 없고,한편으로는 나보다 가정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보고도 싶다”고 말했다.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창업을 하며 젊은 실업가의 길을 걸어 온 박종배씨는 “의류업체 매장을 운영해봤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20여년을 근무하기도 했고,해외에서도 오래 있었다.본인이 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젊은시절 무용담이 쏟아지긴 했으나 이들에게서 ‘왕년에’라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었다.김씨는 “처음엔 주변에서 어깨에 힘 빼라는 소리도 들어봤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단돈 얼마라도 벌면서 사회생활을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고,강씨도 “그저 세탁소의 옷걸이 마냥 남의 옷이 잠시 내 옷걸이에 걸쳐져 있다고 생각한다.옷의 주인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웃으며 벗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옆에 앉아있던 윤씨도 거들었다.아파트 주민대표를 맡고 있는 윤씨는 “경비원 분들 중 새로 들어오신 분이 경찰간부 출신이었는데 주어진 일에 대한 사명감이 대단했다”며 “퇴직 후 어떤 일 창피하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모 봉양과 자식 부양,자신의 노후까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은 없다고 했다.김씨는 “4년 전부터 초등학교 학교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있는데 1~2학년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손주같고 귀여워 활력이 생긴다.현실에 좌절하기보다 70세가 돼도 이뤄지지 않을지언정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강씨도 “나의 경륜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젊은 후배들의 멘토로서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고,윤씨는 “인생의 전환기를 보내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의 삶이다.그 삶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자”며 잔을 들어 친구들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구본호 bono@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