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변호사

▲ 김창규 변호사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에밀 아자르가 ‘자기 앞의 생’에서 사회를 향하여 던지는,심금을 울리는 말이다.화려한 조명 뒤에 쓸쓸히 홀로 버려진 채 극단적 선택에 몰려진 상처입은 영혼들이 있다.혹은 철저한 무관심과 경제적 곤궁함 속에서 빚과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힘든 선택을 하는 상처입은 영혼들이 있다.하나는 영혼의 궁핍 속에서,하나는 물질적 궁핍 속에서,혹은 또다른 자들은 또다른 궁핍 속에서,그렇게 소외와 무관심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다.인간은 자신이 만든 사회구조들,경제구조들,돈,권력 등 온갖 장치들에 의하여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어느덧 보편적 진실이 되었다.

그래서 ‘소외’라는 어색하고,어려운 말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도,어렵지도 않다.지금은 아픈 영혼을 보듬어줄 여유가 없는 듯하다.그래서 그 소외된 영혼들이 가슴 아파 울다가,혹은 외로움에 홀로 흐느끼다가,혹은 서로 영혼을 보듬어줄 다른 영혼들을 간절히 찾다가 결국은 실패한 채,황망하게,어려운 선택에 몰려지고 있다.더구나,화려한 조명과 시기어린 질투,그리고 혼자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과 박수,환호를 받는 그들에게는,그래서 내게도 보듬어야 할 영혼이 있다는 것을 바깥에 보여주지도 못하는 그들에게는,그리고 아무도 도와주기 힘든 그들에게는 더더욱 견뎌내기 힘든 시간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카뮈가 ‘자살은 과연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중대한 철학적 결론’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물론 그러면서도 카뮈는 ‘세상은 부조리하고,인간은 부조리에 대하여 반항하고,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라고 했다.스스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끊임없는 관심을 받는 인생을 선택하여,그 뒤의 허무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지라도,혹은 당장은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고,마치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을 지라도,나는 그들이 한 번만 더 자신을 돌아보고,밝은 생각을 하고,명상도 하고,삶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고,소중한 가족과 이웃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은 138억년 전의 빅뱅과 별의 탄생을 거쳐서,45억년 전에 생긴 태양의 빛을 받아 지금에 이르렀다.우리 모두는 무수한 억겁의 세월과 우연들이 만나서 이 시대의 시간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게 되었는데,반드시 가야만 할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고,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고,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그리고,그런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지하여,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고,각자의 삶을 살아낼 수 있고,서로의 삶을 도와줄 수 있다.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바보같지만,인간적인 5호 담당제 같은 것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일단은 따뜻한 사람이 자기 주변부터 자신의 온기로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한다.그리고 정부나 사회단체도 경제적으로,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작동해야 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그래서,사람은 서로 사랑해주어야 한다.그리고 힘든 환경에서도 ‘자기 앞의 생’의 철부지 모모처럼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고,하밀 할아버지를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고,아름답고,밝게 살아가야 한다.

이제 상처입은 영혼들이 없으면 좋겠다,어떻게 온 인생,어떻게 만난 서로들인데,상처입은 영혼들이 한 번 더 돌아보면 좋겠다.그리고,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을 먼저 아낌없이 사랑하면 좋겠다.그리고,서로 사랑하자.성공만 보며 달리다가,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소외하는 세상은 보내버리자.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이 소중한 영혼임을 깨닫고,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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