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숙 시집 ‘를이 비처럼 내려’


“…(전략)엔터를 놓친 자판이 입천장을 자동기술로 훑는 동안 방금 튀어 오른 ‘ㄹ’이 혀끝에서 펄럭이고 ‘~’을 좇는데 긴 인생이 다 걸리는 ‘을’이 ‘를를를’ 쏟아져 송곳처럼 박히네…(후략)”,시 “‘를’이 비처럼 내려” 중.

단독 음절로는 어디에도 쓰기 힘든 조사 ‘를’이 그 자체로 주어가 됐다.송병숙 시인의 ‘를이 비처럼 내려’를 읽다보면 입 안 속 울림소리가 퍼진다.시인이 언젠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체험했을 어떤 기억이 청각과 촉각의 시적언어로 바뀌면서 익숙한 도식은 사라진다.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결핍의 의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그의 시 ‘사이論’에서는 장절공 신숭겸의 묘를 배경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사람이 그리워 운다’고 노래하면서 ‘사이의 상처’를 환기시킨다.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를’에 대해 “몸통은 온데간데 없고 몸부림만 남은 모습”이라고 했다.과연 그 모습이 어떤 형상일지 상상하게 만든다.춘천 출신 송병숙 시인은 원통중·고교장,강원여성문학인회장을 역임했으며 한림성심대 강사로 활동중이다.시집으로 ‘문턱’을 펴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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