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우 작가 중·단편 소설집
치매 아버지 병간호 경험 담겨
‘현실적·현재적’ 가족 이야기
19년간 한림대 글쓰기 강의
춘천 곳곳 묘사 아름다움 더해

▲ 김기우 소설 가족에겐 가족이 없다 표지.
▲ 김기우 소설 가족에겐 가족이 없다 표지.
“왜 우리만 중심이라고,닮은 것들이 영원히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지 모르겠다”,“어디까지,얼마나 사랑해야하는지에 대해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그저 사랑할 뿐.그게 전부일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 쉽다.그것이 가족이다.김기우 작가의 중·단편 소설집 ‘가족에겐 가족이 없다’는 15년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봤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의 내면이 집약된 책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모두 석·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등 높은 교육수준을 가졌으나 정작 살아가는 현실은 비루한 연구자나 시간강사들이다.그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현재적인 문제’는 다름아닌 ‘가족’.부족한 월급으로 처자식 생계를 꾸려가기도 벅찬데 치매걸린 아버지까지 책임져야 한다.내향적 성격의 주인공은 가족애 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루하루 견뎌낸다.형제들의 마음도 예전같지 않다.직장 동료처럼 사회적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이라면 시원하게 정리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가족’으로 묶여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놓지 못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의 병폐가 가족에게 전가됐다고 지적한다.뿌리 깊은 조상 숭배 사상을 가진 할아버지,종손의 무게를 못이겨 술과 도박으로 가출을 일삼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아버지,현모양처의 표상으로 희생을 자처한 어머니,다시 손자로 이어지는 서사는 가족이라는 구조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이어지는 상처를 드러낸다.김 작가는 “현대사회는 급격하게 변했지만 가족관계에는 공동사회의 습성이 남아있다.체면을 중시하고 장손과 종손에게 모든 혜택이 주어지는 잘못된 민족주의가 가족을 그렇게 만들어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끈끈하게 이어져 사랑하고,이해하고,보듬어 줘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특히 ‘바다’라는 키워드를 사용,원초적 공간에서의 회복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또 인상적인 점은 미스터리 서술기법을 도입해 상상·환상의 형식으로 아버지와 형,아내,헤어진 연인 등 화자와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인용부호 없이 쓰인 부분이다.주인공이 현실에 지쳤을 때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김기우 작가는 한림대에서 19년간 사고와 표현,소설창작 등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해 왔다.그 시간 눈에 담은 춘천 곳곳에 대한 묘사도 여럿이다.‘봄이 끝날 때’에서는 “황사와 미세먼지는 어느 새 강원도 깊숙한 곳까지 몰려와 머물고 있었다.이 지역은 호수와 댐이 많아 안개가 자주 끼는데,황사까지 겹쳐 눈 앞에 막을 드리운 듯 사물들이 두터워 보였다.…이 도시에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 시인이거나 교육자였다”고 춘천을 묘사했다.

김 작가는 “내게 춘천은 토포필리아(장소애를 가진 곳)다.이해관계를 떠나 사람들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춘천은 예술에 대해 근원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공간인만큼 이 곳의 예술이론이나 미학들이 체계적으로 구성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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