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달성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 넘어
“로컬” 영화사 새 페이지 기록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삭품상을 수상하자 봉 감독과 출연배우,제작진 등이 환호하고 있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삭품상을 수상하자 봉 감독과 출연배우,제작진 등이 환호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인치의 벽’을 다시 한번 크게 넘었다.그가 ‘로컬’이라고 칭했던 미국 아카데미에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하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영화 ‘기생충’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계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개 부문에서 오스카 상을 들어올리며 올해 아카데미 최다관왕을 차지했다.아카데미 사상 아시아 영화가 쓴 최초의 기록이자 101년 한국영화 역사상으로도 처음이다.

■4관왕 기염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던 기생충의 첫 수상소식은 각본상에서 터졌다.작품을 공동 집필한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것은 오스카 사상 최초이며,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 이후 17년만이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에 호명되며 다시 무대에 올랐다.비영어권 작품들이 경쟁하는데 국가별로 한 편만 출품할 수 있다.봉 감독은 소감에서 “부문의 이름이 바뀌고 처음 받는 상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오스카가 (부문명 변경으로)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감독상까지 차지했다.쟁쟁한 감독들이 후보로 이름을 올린 데다 영화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이 앞서 미국감독조합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아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결국 봉 감독에게 돌아갔다.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아이리시 맨’으로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아카데미 역사 모두 쓰다
아카데미 수상은 101년 역사의 한국영화 사상 최초다.아카데미 도전으로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48년만에 영광을 안았다.기생충은 지난 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한국 최초’의 수식어를 달며 수상 행진을 달렸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뿐 아니라 아카데미의 역사도 새로 썼다.아카데미 캠페인 기간 기생충은 라이언 레이놀즈,티모시 샬라메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의 SNS에 오르내리며 신드롬급 인기를 보였다.세계 205개국에서 기생충을 사들였고 1억6000만달러(약 1945억원)을 넘는 실적을 올리는 등 작품성과 흥행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간 감독상을 수상한 아시아계 감독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유일했다.하지만 그가 수상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 두 작품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제작된만큼 순수 아시아 영화로는 봉 감독이 최초로 평가된다.편집상과 미술상은 불발됐다.편집상은 영화 ‘포드 V 페라리’가,미술상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에 각각 돌아갔다.하지만 미술상이 후보에 오른 것 역시 아시아계 영화 중 7번째로 기록됐다.한국영화가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미술상 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또 이날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도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라 백인 중심,할리우드 영화 중심이었던 아카데미에서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다.이 감독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공식기록영화 ‘크로싱 비욘드’를 만들었다.

■강원도 예술인들도 힘 보탠 기생충
기생충의 각본 초고의 윤색은 춘천 출신 김대환 감독이 맡아 화제를 모았다.김 감독은 극중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동익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과 동익의 죽음 등을 구상했다.김대환 감독은 “기생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과 전세계가 공감하는 자본주의에 봉준호 감독님의 발칙한 상상력이 더해지며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 점이 인기요소인 것 같다”고 말했다.김 감독은 또 “기생충의 연이은 수상소식을 비롯해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분야의 후보에 올랐다는 점도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일”이라며 “영화에 참여한 사람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순간”이라고 했다.또 이번 영화에서는 원주 귀래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종선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이 주요 소품으로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기택(송강호) 가족이 동익(이선균) 부부를 피해 몸을 숨겼던 거실의 테이블을 비롯해 동익의 딸 다혜(정지소)의 일기장이 숨겨졌던 나무로 만든 가방 등이 박 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했다.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창호 감독도 시상식에 앞서 봉 감독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두 사람의 인연은 2006년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봉 감독이 조 감독의 영화 ‘피터팬의 공식’을 심사하면서 시작됐다.봉 감독은 조 감독의 영화 ‘다른 길이 있다’ 개봉 당시 모더레이터를 자청하기도 했다.조 감독은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지난해부터 전해지는 영화계의 가장 흥미로운 이벤트들을 내 일처럼 기쁘게 봤다”며 “수상과 관계 없이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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