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숙

간판은 없다

가게 문 앞에 내놓은 이 빠진 국수사발에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밥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

비법의 육수도 없다

날씨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날 마는 첫 국수는

죄없이 배고픈 이들의 몫으로 먼저 달항아리에 뗀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서지는 날은

<주인장 노을 보러 갑니다>써 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

면발보다 사람 그리워 찾아오는 단골

묻지 않아도 긴 안부 뽑아내면

경사에도 조사에도 다 배불리 먹으라

국수사리 수북이 부조하는 주인

국숫물 다스리듯 마음 재우고 면이 익어가듯

늙어 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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