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침묵 깬 34살 의사 리원량, 그의 마지막 편지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봄 우레가 우릉거리며 울 때,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해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주십시오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이름을 가졌고,
아는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던 내가
세상에 다녀갔음을
증명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묘지명에는 한 문장만 넣어주십시오
‘그는 인민을 위해 말했다’


염병이 우한폐렴에서,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다시 코로나19로 이름이 바뀌었다.처음 중국발 뉴스가 시작되었을 때,그게 지금 당장 우리의 문제가 될 거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빨리 끝날 것 같았고,그러기를 바랐다.그러나 전염병(傳染病)은 지금은 모든 뉴스를 집어삼키고,공동체를 두려움과 걱정으로 물들이고(染) 있는 듯하다.‘폐쇄’,‘사망’,‘감염’ 등의 용어는 붉은색 ‘속보’로 전달되고,재난경보는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전해진다.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 눈에서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마트는 북적이지만,거리는 텅 비었다.

재난의 한가운데 있어 보니,우한(武漢) 시민들의 공포가 어떠했을지 막연히 그려졌다.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대구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확진자가 증가하고,사망자가 나온 이후,사람들은 재난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면서,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사람들은 문자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으로 안부를 물으며 이 재난의 시간을 견디며 함께 건너고 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言)이다.말은 바이러스의 방향과 속도를 앞지르거나,빠르게 뒤따라 간다.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공기 중의 입자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고 있었을 때,어떤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추적하려면 그들의 말이 필요했지만,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말하지 않는 자’의 감추어진 말(言)은 빠른 속도의 바이러스 전파의 잠재적 이동 경로가 되었고, 재난 지도는 급속하고 넓게 물들어(染) 가고 있다.

재난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나는 ‘말하는 자’를 떠올렸다.얼마 전,중국 우한병원의 의사 리원량(李文亮·1985-2020)이 세상을 떠났다.그는 코로나19의 유행을 처음 감지하고,동료들과 의견을 공유했던 의사였다.서른 넷의 파릇한 의사는 푸른 마스크를 낀 모습을 남긴 채,사라졌다.젊음을 믿었던 그는 병실에 누워서 가족과 동료들에게 걱정 말라고,곧 툴툴 털고 일어날 거라고 했지만,강력한 바이러스는 그의 확신을 비웃었다.심지어 그에게 야윌 틈도 주지 않았다.

바이러스에 제압당한 그는 병실에서 마지막 캄캄한 밤을 견디며 글 하나를 남겼다.“날은 아직 밝지 않았지만,나는 떠납니다(天還沒亮,我走了).”로 시작하는 글을.병실에 누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아내의 손에서 글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그 글의 출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것은 일기이기도 했고 편지이기도 했다.그 글을 읽으며,나는 그가 의사이기 전에 시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량(李文亮),그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누가 그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줬을까,생각해 보았다.그는 ‘글(文)로 빛난다(亮)’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갖고 서른네 해를 살았다.의사였으니, 그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소견서나 처방이었을 것이다.동료들과 환자들의 증상과 소견을 공유하는 단톡방에서 글을 주고받기도 했다.그 곳에서 그는 메르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염려를 공유했다.

이런 건강한 염려를 공유한 ‘죄’로 그는 고통을 받았다.대중들의 불안을 선동한다는 죄목이었다.그는 곧 당국에 소환되었고 경고와 훈계를 받았다.

그는 불안 속에서 진료를 계속했고,결국 그와 가족들이 감염되었다.젊었던 그는 완치를 확신하며 환자들을 돌보았으나 결국 병상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이제 동이 터오기 시작할 때,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기 시작할 때,그는 그가 떠나야 할 것임을 알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글을 남겼다.그는 죽기 전,고향의 검은 땅과 흰 구름을 떠올렸고,아내의 뱃 속에서 꼬물거리는 아이를 생각했다.밀폐된 병실에 누워,아버지가 있는 평범한 아이로 자랄 수 없는 아이의 그늘을 생각했으나,삶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바이러스가 그의 내부를 황폐하게 만들어,더 말하고 싶어 하는 그의 입을 무겁게 짓눌렀다.이제 동이 터오고 있으니(亮),이제껏 반짝였던 빛(李文‘亮’)은 떠나야 했다.그는 “삶이 태산처럼 무겁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그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벼울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봄 우레가 우릉거리며 울 때,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해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주십시오.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이름을 가졌고,아는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던 내가 세상에 다녀갔음을 증명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묘지명에는 한 문장만 넣어주십시오.‘그는 인민을 위해 말했다(他爲蒼生說過話).’”

서른네 해의 짧은 삶을,갑자기 찾아온 마지막을 그는 말로 견디고 있었다.그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함으로써 고통받았고,마지막 말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그는 무겁지만 진실한 그의 이름(글/말로 빛나다,원량(文亮))을 운명처럼 지고 갔다.아직 우리는 고통의 길 위에 있다.지금의 재난이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우리는 피할 수 없는 길을 함께 걷고 있다.지난한 길 위에서,진실에 대해 말하려고 애썼던 그를 떠올린다.리원량.이제,편히 쉬시라.그대의 말과 글의 힘으로 우리는 싸우고 있으니,그래서 결국 이 재난을 지나고 말 것이니.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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