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단 20명, 방역 최일선 ‘백의천사’가 처음 탄생했다
1939년 중국 침략 전쟁 일으킨 일제
종군 인력 위해 도립병원 양성소 신설
같은 해 5월 5일자 간호사 합격 명단 실려
터럭 한올 귀히 여기던 문화, 단발 교체
강원이발시험 48명 합격생 명단 발표
운전사 합격·버스 차장 불운의 사고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신속검사 시스템과 실시간 정보 제공,뭣보다 현장에 뛰어든 의료진과 행정당국,봉사자들이 있다.이들 활동에 격려를 보내고 ‘할 수 있다’는 의지로 연대 동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누구보다 긴장 속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최일선 간호사를 향한 응원이 쏟아진다.

일제 말기까지도 강원도 간호인력은 수 십명 선이었다.1936년 11월 20일자 매일신보에 ‘강원도내 치과의와 산파 간호부 수 불과 105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당시 평강,회양,통천 등 남북강원도를 통틀어 간호사는 39명에 지나지 않았다.치과의사는 18명,조산사는 48명이었다.여성이 현금을 봉급으로 받는 직업이 귀하던 시절 간호사는 선망하는 직업이었다.해마다 뽑는 인원도 적어 1938년 7월 9일자 매일신보 7면에 조산사와 간호사 합격자 명단이 실렸는데,간호사는 길강·박정숙·서필순·오영숙·이금자·이만춘·이명자·이선녀·장옥춘·장적계·전재필·정열모· 하묘순 13명이다.

서울 보구여관 간호원 양성학교에서 첫 간호교육이 실시된 것은 1903년이지만 강원도내에서 간호교육이 시작된 것은 일제 말기인 1939년으로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후였다.그것도 일반인 건강 보건 차원이 아니라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전쟁터에 보낼 종군 간호인력을 위해 전국 각지 도립병원에 양성소를 신설한 것이다.강원도립 춘천간호부양성소 제1회 입소시험 합격자 명단이 1939년 5월 5일자 매일신보에 실렸다.시험은 도립의원이 있는 춘천과 강릉,철원,장전 네 군데에서 치러졌다.춘천의원에서는 송영희·민병희·김유순·김옥복·오명수·오명순·이희정,강릉의원은 최변경·최옥희·신수종·이순자·천순금,철원의원은 김미안·함용옥·이보배·김수복·진연순,장전의원은 김춘자·이성숙·김거원 등 20명이 합격됐다.최연숙·최희옥·최송자·지성옥 4명은 보결생으로 발표됐다.
 

▲ 1 간호사 배출을 위한 간호교육은 중일전쟁 발발이 계기가 됐다. 매일신보 1939년 5월 5일자에 실린 강원도립춘천간호부양성소 제1회 합격자 명단 기사. 2 1939년 8월 4일자 매일신보 3면에 실린 강원도 자동차 운전수 합격자 기사. 3 이발사 합격자 명단이 실린 매일신보 1937년 4월 17일자 3면.
▲ 1 간호사 배출을 위한 간호교육은 중일전쟁 발발이 계기가 됐다. 매일신보 1939년 5월 5일자에 실린 강원도립춘천간호부양성소 제1회 합격자 명단 기사. 2 1939년 8월 4일자 매일신보 3면에 실린 강원도 자동차 운전수 합격자 기사. 3 이발사 합격자 명단이 실린 매일신보 1937년 4월 17일자 3면.

터럭 한 올 귀히 여겼던 전통문화가 단발로 교체되면서 이발사와 운전사가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첫 이발사 시험은 1934년 11월 5,6일 춘천과 강릉,철원 세 지역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1937년 4월 17일자 매일신보 3면에는 강원도경찰부에서 주관해 이론과 실기를 통과한 강원이발시험 합격자 명단이 실렸다.1937년 3월 23,24일 춘천,철원,강릉 세 곳에서 치른 이발시험 응시자는 48명. 합격자는 양순환(춘천)·조창근(춘천)·유장근(횡성)·윤석환(원주)·서정록(이천)·이홍빈(평남 강동)·노용문(춘천)·강성우(강릉)·최지영(삼척)·원태산(삼척)·김인봉(김화)·조윤성(철원)·이영학(철원)·김쌍마(철원)·김종철(홍천)·이도길(철원)·김택일(평강)·윤종구(이천) 18명이다.학설시험 합격자는 김운용(강릉)·김성복(강릉)·박능학(강릉)·김상진(강릉)·김금용(강릉)·전영빈(양양) 6명이었다.

1938년도에는 48명의 이발사를 뽑았다.매일신보 1938년 6월 10일자 ‘강원이발사 시험 합격자’ 제목 기사에 실린 합격자 중 김화 출신이 김연숙·김학준·유규열·장자근성·최재현·황갑수 6명으로 가장 많았다.그 다음이 강릉 출신 김금용·김상진·김용복·박흥룡·이암우,삼척 출신 백구성·전동이·최대행·최상린·황해수 각 5명 순으로 많았다.

강원지역 운전사 시험과 관련하여 처음 등장하는 신문기사로 확인되는 것은 1924년 7월 15일자 매일신보이다.4면에 ‘자동차 운전수 시험’ 제목으로 6월 22,23일 자동차운전수 시험을 시행해 지원자 29명 중 합격자 11명을 냈다는 기사이다.추촌송일·옥문근·이정포·엄태선·이학수·김정석·이선국·김창식·신일소·박칠성·김익배 순으로 합격자 이름을 일일이 싣고 있다.

15년 후인 1939년 6월 22일부터 3일간 강원도경찰부에서 시행한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 합격자 명단이 신문에 실렸다.(매일신보 1939년 8월 4일자 3면) 박운봉(강릉)·박규현(고성)·김용준(원주)·신응섭(원주)·김갑수(영월)·고명균(영월)·임응인(영월)·장진학(춘천)·정병남(춘천)·최서영(춘천)·김응원(춘천)·최기수(원주)·박정규(원주)·최흥엽(이천)·이은창(춘천)·박진학(울진)·박용완(울진)·유용득(울진)·김인재(울진)·강상원(울진)·강○문(양양)·장인대(양양) 25명이다.

버스 운전기사와 동행한 직업은 손님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계산하던 차장이다.대개 10대의 나이의 어린 여성이었는데 여성 취업이 희소하던 시절이어서 인기였다.버스 차장으로 누가 일했는지는 불행하게도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등장된다.1936년 10월 23일 매일신보에 ‘10여간 단애에 추락 15세 여차장 즉사,승객 3명은 2주간 치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1936년 10월 19일 강릉에서 간성으로 가던 도중 양양군 죽왕면 가진리 고개 내리막길에서 핸들이 돌아가지 않아 절벽으로 추락해 차장 김옥자씨가 즉사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다. <본지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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