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엷은 미소, 마음의 안녕 너머 생명의 구원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절망 고통
삶·이웃 소중함 일깨운 쉼표
의료진들의 고군분투
폐지 팔아 모은 돈 기부
낙관·긍정의 마음으로 퇴치 기대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윈스턴 처칠



고요하고 잠잠하던 연주회장에 난데없이 총소리가 울려도 유분수지,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골목골목에 유령처럼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있다.이름 하여 코로나-19.계절은 어느덧 환한 봄인데 꽁꽁 걸어 잠근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파 몰아치는 한겨울이다.불과 한두 달 사이에 세상에는 깊은 슬픔의 강이 흐르게 됐다.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입술을 빌려서 말하듯이 아직도 신(神)들은 끝도 없이 인간들에게 불행의 장난을 치는가 보다.

그러나 불안,절망,고통은 비록 반 강제로 주어졌지만,오히려 그것은 삶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쉼표’가 되기도 한다.보라!의료진들은 물론이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군분투,분골쇄신하며 이 몹쓸 전염병에 맞서고 있는가.어린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모아 두었던 용돈을 기부했다.가난한 장애인 청년은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보답이라며 아끼던 마스크 11장을 경찰서 계단에 두고 황급히 뛰어갔다.그리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 10만원을 부끄럽게 내민 할머니도 있었다.바로 이렇게 작지만 큰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로 있기에 대한민국은 전염병과 짱짱히 대결할 수 있고 머지 않아 모든 세계인이 찬탄하는 퇴치를 이룰 수 있으리라 본다.이런 때일수록 낙관,긍정의 마음을 잘 가다듬으면 좋겠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나 같은 화가조차도 역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당장 직접적으로야 도움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내게 부과된 역할만큼은 충실히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 이광택 작 ‘자비로운 밤’
▲ 이광택 작 ‘자비로운 밤’

그것은 ‘예술 이전에 삶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예술이란 다름 아니라 삶의 표현이 아니던가.예술은 삶에서 나온 것이고,삶의 마당에서 역할하는 것이며,따라서 외딴 섬처럼 독립될 수 없는 것이다.나는 항시 되묻고 있다.“너는 그림을 왜 그리냐”고.대답은 간단하다.“내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나는 아직도 소통으로서의 미술,예술의 사회적 기여를 창작의 목표로 삼고 있다.그래서 예술 사학자 곰브리치도 말했을 것이다.“인류의 미술은 라스코 동굴 벽화 이후 줄곧 퇴폐적으로 흘러왔다.”고.예술이란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지 초월자가 되어 삶을 넘어서고 재단해선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한 줌의 비평가를 만족시키는 위대한 화가가 되기보다 차라리 ‘40년간 붓을 휘둘렀어도 예술이란 여신의 치맛자락조차 잡지 못했던’ 가련한 베어먼 할아버지(오 헨리 ‘마지막 잎새’)를 닮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늙고 가난한 무명화가였지만 폐렴에 걸린 처녀 존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비바람을 무릅쓰고 담쟁이 잎을 그린 뒤 삶을 다하지 않았던가.병과 죽음의 공포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백신은 다름 아니라 희망과 사랑이었음을 베어먼 할아버지는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 그림은 그러한 나의 마음이 반영돼 있다.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부처님을 표현했다고나 할까.그 어떠한 바이러스,사악한 기운도 완전하게 막아주실 것 같다(1년 여 뒤의 전염병 창궐을 예지한 작품 같아 나도 놀랐다).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을 연상하며 그린 것인데 그래서일까,짚불 땐 구들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담백하게 표현되었다.아기를 안고 있는 부처님의 엷은 미소가 더없이 그윽하다.

한 해를 마감하는 2018년 12월 31일에 완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소품이지만 그림이 풍기는 좋은 느낌 때문일까.곧 세상에,사람들에게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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