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관심 항의 국적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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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지 꼭 58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시절 일제에 의해 강제로 연행 당한 피해자들의 한맺힌 설움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 조차 거치지 못한 채 서서히 국민들의 인식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제 80살을 넘긴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도 생명력이 다해 하나 둘 씩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살아있는 강제연행 피해자들은 마지막 투혼을 불살라 '국적포기'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강구해 가면서 피해에 대한 진상조사만이라도 염원하고 있다. 김경석 태평양 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장(78)을 만나 이들이 국적포기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진상조사 특별법안' 3년째 표류

 - 김회장은 평생을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의 권리와 일본정부의 사과촉구 투쟁을 이끌어온 신지식인이다. 제58주년 광복절을 맞는 감회가 그 어느 때 보다 새로울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58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일제의 만행과 강제연행 납치의 해독은 여전히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있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억들이지만 일제 당시에는 갓 시집온 색시가 졸지에 남편을 강제연행 당하고 그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일제 당시 끌려갔던 수많은 강제연행 피해자들은 현재 80대를 넘겨 하나 둘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범국 일본에 당한 피해 실상은 60년이 지나도록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광복의 기쁨보다 그 이면을 살펴야 할 때다.”
 - 역대 정부와 국회가 일제 강점 하 강제 징용·징집 피해자들에 대한 무관심에 반발, 최근 국적포기를 선언하고 포기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려 했던 계기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한 예로 집안에 강도가 침입했다면 얼마의 피해를 입었고 가족 중 누가 다쳤는지를 살피고 조사하는 것은 가장의 책임이고 당연한 의무다. 하물며 나라와 국민이 타 국가로부터 당한 피해일 경우 더 말 할 것이 있겠는가. 지난 2000년부터 일제 강점하 강제연행 희생자 단체와 회원들 스스로 최소한 피해 진상만이라도 조사하자고 제출한 특별법안 처리가 3년 째 표류되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기다릴 시간도 여력도 더구나 남은 생명력도 다 소진한 상태다. 이같은 무관심은 국가가 국민들을 저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국적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 하지만 13일 국적포기서를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하려다 공권력의 저지로 좌절됐는데 앞으로 계획을 밝혀달라.
 "국적포기서를 인터넷 또는 우편으로 접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가 이번 회기 내에 일제 강제징집 피해자에 관한 특별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자동폐기될 경우 태평양 전쟁 희생자 유족회 등은 해당 국회의원들을 입법 부작위로 고발할 방침이다. 당연히 입법화 해야 할 법안을 좌초시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김회장은 일본 도야마 현 후지코시 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일화를 소개해 달라.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있었던 일이 바로 후지코시 사 상대 소송이었다. 93년 당시 강제연행 피해자로 구성된 원고 9명과 함께 끈질긴 노력 끝에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3억5천만원의 배상은 물론 사과도 받아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도 대표적인 우경화된 회사인 후지코시 사 건물에 일주일 동안 태극기가 게양되는 쾌거를 맞보기도 했다. 특히 승소 후 화해 당시 조건부로 내세운 '한국인 강제연행자에 대한 사죄의 비석'이 공장구내에 건립됐다. 그 일은 아직도 내 스스로가 일본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함으로써 당시 피해자들의 맺힌 한을 다소라도 풀어주고자 하는 사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재현 akcob@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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