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득 기획국장

 2003년이 이제 열흘남짓 남았다. 어느날 문득 바라본 밤하늘의 그믐달이 유난히 싸아한 느낌을 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뮤엘 베게트의 희곡'고도를 기다리며'의 난해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 작품은 그동안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으며 올해로 세계에 초연이 된지 50주년이 된다.
 국내에서도 1969년 초연이후 34년동안 이어온 장수극이다.
 무대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황량한 시골길이다. 그 고목나무 아래서 낡은 옷차림의 블라디밀과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떠돌이 사내가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두 사람이 기다리는 고도가 사람인지 사물인지 상념인지는 알 수 없다.
 기다리고 있으면서 그에 대한 언급은 없고 엉뚱한 일로 말다툼만 한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의 도둑 가운데 하나는 구제받았느니, 둘 다 지옥에 떨어졌느니 하는 것으로 언쟁을 한다. 싸우다 지치고 권태로워지면 둘이서 목을 매자고 한다. 매기로 약속해 놓고는 목을 맨 나무가 부러져 어느 하나가 살아남으면 죽은 자만 억울하니 매지 못 하겠다 하여 다시 의견이 엇갈린다.
 밤이 되어도 기다리는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 소년이 쫓기듯 달려 나와 고도는 오늘밤에 오지 않고 내일 밤에 나타날 것이라 하고 사라진다.
 이튿날에도 이 두 사람은 해진 모자와 떨어진 신발을 만지작거리며 고도를 기다리지만 달이 뜨고 서천에 질 때까지 그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그 소년이 나와서 같은 말만 하고 사라질 뿐이다.
 고도가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타나면 구제받을 것으로 믿고 모레도 글피도 무의미한 언쟁으로 지새운다. 끝날때까지 고도에 대한 시사나 암시는 없다. 하염없는 기다림을 그린 부조리극이다.
 원작자도 모르는 고도. 기다림의 대상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도는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로또복권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르고 따끈한 밥 한 그릇일지도 모른다. 또한 돈, 권력, 명예, 쾌락, 출세 등등.
 그러나 행복한 기다림과 피할 수 없는 쓰라린 기다림의 공통점은 삶의 의미를 느끼게하고 인생의 원동력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는 묵묵히 고도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타락의 늪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지 한해의 끝자락에서 자성해 보자. 우리는 너무 세속적인 깊은 중병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최근의 정치상황이 갱 영화같아 민초들의 마음은 더욱더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누가 누구를 탓하는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너무 지쳐 기진맥진해 있는 블라디밀과 에스트라공의 귓전에 이제까지 듣던 중 가장 큰 희망과 기쁨의 고도(Godot)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를 온 국민은 또다시 기다리고 있다. 동해안에서 바라본 찬란한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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