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창성 경제부장

 핀란드의 여름은 백야(白夜)로 유명하다. 낮시간은 새벽 3시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계속된다. 밤 10시를 지나도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수도 헬싱키를 찾은 이방의 관광객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원로원 광장'과 '루터 대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국의 정취를 즐긴다. 헬싱키대학, 수상집무실, 대통령궁, 올드마켓, 우스벤스키 그리스정교 성당, 헬싱키 남항 등으로 이어지는 관광루트는 하루종일 러시아, 스웨덴, 미국, 중국,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북유럽 '발트해의 아가씨' 헬싱키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핀란드인들에게 한국은 '삼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핀란드의 자존심 '노키아'의 시장을 잠식하며 세계 핸드폰 시장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헬싱키 시내를 거미줄 같이 연결하고 있는 전철 길을 분주히 오가는 전차(HKL)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것은 삼성의 핸드폰 광고다. 핀란드인들은 십여년 동안 막대형의 노키아 핸드폰만을 구경해오다 삼성의 조개형 핸드폰을 보고 열광하고 있다. 헬싱키의 도심 도로에서 만나는 광고 입간판도 24시간 삼성의 핸드폰을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인들에게 삼성은 한국이고, 한국은 삼성이다.
 기자는 2주동안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와 지방도시들을 방문하며 핀란드인들에게 각인된 또하나의 한국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제 2도시 땀뻬르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아물레티'의 국제부장은 핀란드의 언론에 비친 아시아와 한국의 모습을 소개했다. 90년대 후반 모스크바에서 특파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아시아 여러나라의 모습을 그동안 핀란드 신문에 보도된 뉴스사진을 통해 설명했다. 그가 한국하면 생각나는 기억의 한 장면으로 고른 사진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서울의 고층빌딩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의 붉은 악마도, 그리고 선거혁명으로 평가되는 참여정부의 출범도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한국의 모습은 파업이었다. 주먹을 불끈 치켜 올리고 '파업'이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한 머리띠를 두른 파업 노동자들의 사진. 핀란드인들에게 한국은 그렇게 인식돼 있었다. 19세기 후반 핀란드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서 방직 노동자들이 넘쳐나던 지방도시, 20세기초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꿈꾸던 땀뻬르에서 한국은 파업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유럽의 언론에 비쳐진 '한국=파업'이라는 등식은 며칠후 과거가 아닌 오늘의 한국 모습으로 재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아침 기자가 묻고 있던 '소코스호텔 헬싱키'에 배달된 영국 '파이낸셜 타임지(FT)' 해외판은 전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국내 한 시중은행의 파업소식을 대문짝만 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한국의 만성적인 하투(夏鬪)가 시작됐다'는 기사와 함께…. 핀란드의 자존심 노키아 본사는 헬싱키 근교에 핀란드를 상징하는 '투명성'을 웅변하듯 유리건물로 지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장을 하루가 다르게 잠식해 들어오는 삼성의 본거지, 한국의 기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력과 신형 제품을 소개하는데 1시간을 100% 투자했다. 한국 기자에게도 노키아 세일즈맨의 역할을 주문하며 자신들을 팔았다. 파업이 국가상징이 돼버린 한국. 이 때문일까. 소강국 핀란드인들은 한국의 경쟁력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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