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체육회 이사회의 의사 진행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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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철학자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내뱉은 말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재판을 받고 있는 그 악명 높은 아이히만이 아무 이데올로기적 확신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사내일 뿐이더란 뜻이다.
 엊그제 열린 도체육회이사회에서, 체육회 직원을 일본인에게 무릎 꿇도록 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 도체육회 사무처장을 구하려는 의도로 김진선 지사가 택한 이사회의 자의적 형식을 알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저 미묘하고도 불쾌한 뉘앙스의 그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날 회의를 주재하는 김 지사는 그저 평범했고, 너무도 평범했다. 아이히만처럼 역사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사실 평범하다. 비록 권력과 명예와 부와 지식을 지녔다 할지라도 인간이란 도대체 근본적으로 그저 그렇게 평범하다.
 진실하고 솔직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일부 포기한 듯한 이런 전제 아래 살펴봐도 그날, 김 지사가 만든 도체육회이사회의 파행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성과 퇴장이라는 돌발 사태 속에서도 지사는 임기가 이미 끝난 사무처장 재임명 동의를 마음먹은 대로 공개 거수의 방식을 통해 결국 받아냈다. 스포츠로 몸과 정신이 맑은 도체육계 원로들의 고견을 수렴하려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말이다.
 여기서 생긴 중대한 문제는 그 순서의 불공정이요, 절차의 불합리다. 곧, 회의의 품격이 지사 수준에 맞지 않았고, 특히 의사 진행 순서 절차 방식의 독단성엔 말문이 막힌다. 공교로움에 이르러선 얼굴이 달아오르게 되지 않는가. 시중의 장삼이사도 남의 의견을 귀꿈스레 들어두며, 초등학교 분단장 재신임 결정도 손 들어 하는 이런 모양새가 아니다. 그리하여 "그런 분이던가" 하는, 저 아렌트의 '아무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없는' 그 '평범함'에 적이 실망되더란 얘기다.
 '대학(大學)'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계한다. "모든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나니, 일의 선후를 알면 곧 도(道)에 가까워지리라." 우리야 어찌 도까지 얻기를 바랄 수 있겠나. 강작(强作) 않고 나지리하게 서서 그저 순서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김진선 지사는 순서와 절차를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정말 오랜만에 강작한 것 같다. 사실 오랜만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강제로 일을 만들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억지로 매듭지으려는 측면을 보였다.
 눈을 떠야 별을 볼 것이요, 새도 깃을 쳐야 날아갈 터인데 왜 자꾸 그렇게 심적 조급 초조함을 들켜 버리는지 알 수 없다. 아니다,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때가 됐으므로' 매사를 진정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가져가려 함을 다 알고 있다. 임기가 끝난 체육회 사무처장을 살려내려고 무리를 범한 김 지사가 앞으로 더욱 심각한 인간적 그리고 정치적 오판을 거듭하지 않을까, 그게 염려스럽다. 이런 차원에서 도체육회 사무처장의 일은 체육계 인사를 비롯한 도민 모두가 공감 수긍할 공정 합리적 방식으로 가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염려되는 게 또 있다. 혹 긴 세월 동안 한 자리에 있다 보니 그야말로 사고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가부장적 멘탈리티에 젖었는지, 정치적 판타지에 떨어졌는지, 가공할 무책임에 스스로를 던져 넣으려는지, 그리고 그렇게 되는 걸 정말 모르는지가 걱정된다. 본인을 위해, 강원도민을 위해, 이 땅 지방자치의 온전한 정착을 위해 스스로의 지나친 '평범함'을 새삼 성찰해 봄 직하다. 비범할 수 있었던 김진선 지사로서는….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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