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궁예도성, 일명 태봉도성에 대한 남북공동 학술조사의 필요성은 최근 수년 동안 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던 사학계 최고 과제 중 하나다. 따라서 철원군이 이 도성에 대한 남북공동학술조사를 추진하는 것은 그동안 그 필요성만 제기되던 학술조사가 드디어 지자체와 주민의 힘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는 데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사업이 태봉국의 자취를 찾아 자료화해 온 지역의 향토사학자, 남북 분단군(分斷郡)으로써 '북철원'과 교류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노력의 대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서기 904년에 도성을 짓고, 이듬해 송악(개성)으로부터 천도한 궁예의 철원성 위치에 대해서는 학계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러나 지난 98년 한림대 한림과학원이 주최한 DMZ학술세미나를 계기로 그 위치가 DMZ 내 홍원리, 월정리, 중강리 일대의 풍천원이며, 아직도 항공정밀사진 등을 통해 유지가 식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었다. 더구나 도성의 외성(外城)의 남북방 성벽이 DMZ 남북방한계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유적의 남북한 공동조사의 필요성이 더욱 제기됐었다.

물론 이 도성에 대한 남북공동의 정밀조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단 북한이 이 조사에 응해와야 하고,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민간 사학자들이 DMZ 내의 조사를 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의 협의 등 정치적 문제가 뒤따라야 한다. 또 남북한군이 대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뢰밭화 된 유적지를 답사·발굴해야 한다는 물리적 문제도 있다. 그러나 철원군의 이번 조사사업 추진은 그같은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내딛어야 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번 조사사업의 또 다른 중요성은 최근 남북 화해무드를 타고 정부와 道에서 추진하고 있는 '평화시', '평화 프라자' 건립 그리고 경원선 복원에 대한 사전 역사유적조사 성격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사업은 평화와 통일을 기초한 기념비적인 사업이지만, 우선 역사유적 등 환경조사를 근거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진작부터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예도성 학술조사사업은 당장 DMZ 안을 답사하거나 북한 학자를 초청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태봉국은 도성 밖에 10 개 이상의 외곽 산성을 쌓고 수도를 통치했기 때문에 철원평야 전역이 사실상 '왕도'였으며, 곳곳에 유적이 널려있다. 양지리 성모류성, 대마리 중어성, 포천 보개산성, 신철원리 명성산성 등은 이 왕도의 외곽성들이면서도 제대로 역사 앞에 모습을 내보이지 못했다. 또 정사 뒤에서 구비(口碑)문학 형태로 지역에 잠자고 있는 '태봉국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도 이 조사 사업에서 우선 착수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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