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사랑 실천 '헌혈 전도사'

photo_caption
지금까지 275회 헌혈 기록을 보유한 헌혈왕 이순만씨. 매월 2번씩 헌혈하는 그는 헌혈은 자신의 건강유지는 물론 죽어가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이웃 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일석삼조의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내 피가 저 사람 몸속에서 흐르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 중 누군가가 내피를 받아갔을지도 모르고. 꼭 그런 생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도 구면인 듯 낯설어보이질 않습니다. 2주에 한 번씩, 한 달에 두 번, 일년에 24 번 정기적으로 어김없이 헌혈을 하는 이순만(47)씨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97년 도내 첫 100회 돌파… 매달 2회 지금까지 275회
14년간 헌혈량 무려 1t … 깨끗한 피 위해 금주·금연
적십자 방울봉사회 결성 헌혈 캠페인 활동 앞장


 훤칠한 키(180cm)에 균형 잡힌 체격(75㎏), 혈색 좋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끊임없이 넘쳤다.
 첫 번째 헌혈은 학교 다니던 시절(삼척공전 현 삼척대 전신)에 했습니다. 단체헌혈이었죠. 경동탄광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사고로 급한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이 발생하면 그는 선뜻 팔을 내밀었다. 제 피가 O형이라 누구에게나 줄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헌혈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이라크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80년대 후반 그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한 동료 직원에게 피를 나누어 주었고 이역만리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동료를 구해냈다.
 헌혈을 하면 건강에 해롭다는 말들을 하지만 낭설일 뿐입니다. 10년 넘게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오면서 한 번도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느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날아갈 듯 몸이 가뿐하고 새로운 활력이 샘솟는 걸 확인했습니다. 헌혈하다 에이즈 같은 무서운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맹랑한 소문도 헌혈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지어낸 말입니다. 이라크에서 귀국한 후 그는 92년부터 본격적인 헌혈에 나섰다. 처음에 너무 자주 헌혈하는 게 아무래도 몸에 좋을 수 없다며 가족들이 걱정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두 달에 한번 하던 헌혈을 95년부터는 한 달에 두 번씩으로 늘렸다. 성분헌혈 방법이 새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성분헌혈이란 성분 채집기를 이용해 혈장이나 혈소판 중 한가지 성분만 채혈하고 적혈구 백혈구 같은 나머지 피의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혈액의 회복기간이 가장 긴 적혈구를 되돌려줌으로써 헌혈자의 신체적 부담을 덜어준다. 성분헌혈 방식이 도입되면서 그는 1년에 24회를 헌혈해왔다. 그렇게 해서 지난 97년 10월 도내 최초로 100회 헌혈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그가 헌혈한 횟수는 275회, 그의 몸에서 빼낸 피의 양은 무려 1톤이 넘는다.
 헌혈은 1석2조가 아니라 1석3조의 득을 가져다줍니다. 채혈한 만큼 새로운 피가 만들어져 몸에 활력이 생기고 내 피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꼬박꼬박 모아둔 헌혈증서로 백혈병 환자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의 수혈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도 보람입니다. 기왕이면 맑고 깨끗한 피를 남에게 주겠다는 생각에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가벼운 운동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항상 유지하니까 이보다 더 좋은 건강 증진법도 없는 셈이죠. 그래서 그런지 그는 건강하고 쾌활해보였다. 헌혈을 해오면서 소화제나 감기약을 먹어본 적이 없고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을 드나든 적도 없다고 했다. 헌혈을 하면 자동으로 혈액검사가 이루어지니 1년에 몇 번씩 검진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껄껄 웃는다.
 헌혈하는 사람이 해마다 줄어들어 우리나라는 이미 혈액 비축량 부족국가가 된지 오래다. 특히 매년 여름철이면 혈액 재고량이 급감해 급한 수술 환자를 위한 수혈 비상대책이 따로 마련되어야 할 판이다. 전체 헌혈자의 절반 이상을 16~29세의 젊은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사실상 단체 헌혈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신규 헌혈자의 수도 10년 전인 95년에 비해 절반 정도인 40만명 선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피를 구하지 못해 수술을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헌혈이 남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 친지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임을 꾸준하게 홍보해야 합니다. 헌혈에 대한 잘못된 국민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 헌혈과 수혈에 얽힌 각종 불신을 해소해야 하고 헌혈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방울 적십자 봉사회’는 헌혈 캠페인을 주된 사업으로 지난 92년 출범했다. 헌혈을 자주하는 지역사회 인사들이 모여 친목도 다지고 헌혈 인구를 늘리기 위한 봉사단체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지금은 20여명 구성원들이 종합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헌혈 캠페인과 헌혈 증서를 모아 어려운 환자들에게 기증하는 기본적인 일 외에 소외계층 돕기 자연환경 보존 활동도 한다.
 최근엔 원주 밥상공동체의 연탄은행에 참여해 춘천지역 어려운 가정에 연탄 대주는 일도 시작했다. 우리가 헌혈하는 핏방울에서 방울이란 이름을 땄습니다. 방울은 작지만 모여서 큰 것을 이루는 단위라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고 응집 결속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회원 각자는 한개 방울이지만 그들이 모여 발휘하는 힘은 커다란 추진력이 됩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남을 돕는 사람은 즐거운 보람을 느낀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누고 봉사하는 것은 계량할 수 없는 작은 희생이지만 밝은 사회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그 바탕이 견고해지고 넓어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합의 질긴 끈으로 끈으로 단단히 묶여 결속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비록 작은 단체지만 적십자방울봉사회를 통해 일반 시민들의 헌혈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지금처럼 헌혈자 수가 줄어들고 학생이나 군인들의 단체헌혈에 의존하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피가 모자라 외국에서 수입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이순만씨는 그동안 헌혈과 봉사활동으로 수많은 상도 받고 감사장도 받았다. 지난 해 6월 14일은 세계보건기구 국제적십자연맹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가 제정한 세계헌혈자의 날, 이순만씨는 이날 대한 적십자사 이윤구총재의 표창장을 받았다. 세계적 헌혈인으로 인정된 그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담은 상이 주어진 것이다.
 이순만씨는 (주)종합건축사무소 산에서 감리 일을 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춘천근교 사암리에서 아내(지연자· 47)와 두 딸 수연(13) 지연(9)과 함께 주말이면 텃밭을 가꾸며 어릴 때부터 모아온 우표를 정리하고 감상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나누고 봉사하는 삶 속에서 보통사람의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다.
  논설고문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