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오성산 밑에서 발생한 DMZ 산불은 동쪽으로 이동해 남대천을 건너 뛰어 옛 광삼리 벌판까지 태우다 27일 내린 눈으로 3일만에 자연진화 됐다. 군부는 이 불이 "DMZ내 북한 쪽에서 발화했을 뿐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북쪽의 의도적 산불인지에 대해 신중히 대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제5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DMZ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수풀제거용 맞불 작전을 포함한 '화공작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이래 첫 발생한 불이라는 점에서 민감한 케이스로 취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불을 놓고 군사적 합의 파기이니, 도발이니 하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DMZ의 불은 시계와 사계를 가리는 초목을 태워 없애는 소위 화공작전이 주원인이지만, 야생동물이 지뢰를 밟아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며, 최근엔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군의 주둔지 영농활동 중 발생한 실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단절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반사적으로 얻어낸 DMZ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이번 불을 계기로 우리군은 물론 북한군에 촉구하자는 것이다.

DMZ의 자연생태계는 일반에게 알려진 것처럼 '50년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극상(極相)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원시성 때문에 그곳을 '자연의 보고'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DMZ 자연생태계는 장기간 냉전체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형성된 아주 특이한 자연의 얼개 인 것이다. 없던 독수리가 왜 날아오고, 민가가 없는 그곳에 왜 들고양이가 많으며, 길가에나 피는 민들레가 왜 해발 1300m의 대암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는지를 설명하자면 그것은 한국 DMZ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편으로 그곳은 지금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한 TV사극의 궁예도성 같은 대규모 사료가 묻힌 역사유적지이며, 반세기 전 우리가 살던 모습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문화의 무덤'같은 곳이다.

앞으로 남북한이 공유할 이 예기치 않았던 자산을 실화든 화공작전이든 해마다 불태우려 든다면, 우린 지금 엄청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DMZ 불은 이번 철원에서도 보았지만 스스로 꺼질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으며, 진화 뒷자리에 단 한푼 예산 투입도 할 수 없는 곳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DMZ 산불은 99년 11회, 지난해 19회가 발생했으며 169㎢와 371㎢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마다 DMZ 자연의 20∼40%가 잿더미로 변한다는 계산이다. DMZ를 유네스코 '접경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DMZ 자연생태계를 세계의 눈이 감시한다는 뜻이다. DMZ는 이미 전장이상의 세계의 자연자산이라는 각성을 남북한 모든 군인들에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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