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영동본부 취재부국장

 지난 98년과 2000년 초대형 산불로 인해 무려 1741㏊ 산림이 잿더미로 변한 강릉에서 다시 소나무 1400여 그루가 한꺼번에 잘려나가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백두대간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세포를 도려내 듯 수술을 하는 것이니까 베면 안된다고 말릴 수도 없다.
 감염목은 3그루 뿐인데 1400그루를 베어내 태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은 뿌리와 그루터기까지 훈증(燻蒸) 처리를 해야하니 재선충병의 치명적 위협을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벌채현장을 지키던 강릉시 산림관계자는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고 아픔을 토로했다.
 강릉은 율곡 선생이 '호송설(護松說)'을 지어 후세에 교훈을 남긴 소나무 고장이다.
 지난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1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대관령 금강 소나무 숲을 비롯해 초당 솔밭까지 솔 내음에 취할 수 있는 명소가 곳곳에 즐비하다.
 신응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기능보유자)은 "전국을 다 뒤져도 삼척∼강릉∼양양 소나무 만한 목재가 없다"며 "질감이 뛰어나고 나이테가 촘촘해 비, 바람에도 오래 견디는 것이 그야말로 최상이어서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 복원의 산실이 된 곳"이라고 극찬한다.
 궁궐 도편수로 평생 소나무와 함께 살아온 그가 강릉에 고건축 박물관과 목수 학교를 설립하려는 것도 이 지역 토종 소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진 때문이다.
 그런 강릉에 재선충병이 발병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산림당국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엊그제 산림청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는 농림부 장관이 "이제는 일본에서 실패한 방제 대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뭔가 믿을 만한 성공 방제 대책을 내놔야 할 것 아니냐"고 관계자들을 심하게 다그쳐 회의장이 일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돌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혹자는 "재선충이니 산불이니 하는 위해 요소들이 다 자연적 현상이므로 심각한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생력에 의해 또 복원된다"는 말로 비상 상황을 위로하기도 한다. 한술 더 떠 산불 때 화약고나 마찬가지인 소나무 숲을 아예 형형색색 활엽수로 바꾸자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자연 복원때까지 걸리는 그 시간적 공백은 어찌하나. 또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를 대신 차지한 활엽수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그 긴긴 겨울의 공백은 또 어떻게 하나.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떨어지는데, 솔아 너는 어찌하여 눈 서리를 모르는가'라고 소나무를 예찬한 고산(孤山) 윤선도 선생의 '오우가(五友歌)' 한대목을 다시금 음미하고 싶은 때다.
 마침 성산면 금산리 재선충병 피해지에서 벌채가 시작된 지난 26일은 호송설을 남긴 율곡 선생을 기리는 율곡제 본제가 오죽헌에서 거행된 날이다. 벌채장소도 호송설을 낳은 금산리 임경당(臨鏡堂) 처소에서 지척이다. 후세에 경고 메시지를 강조하는 듯 해 마음이 더 무겁다.
 전문가들은 강릉은 예찰을 통해 조기 발견을 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며 현재로서는 주민 신고와 예찰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소나무 지키기 범도민 협의회' 구성도 제안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재선충병 발병 소식 이후 "혹시 재선충 아니냐"는 주민 신고도 부쩍 늘고 있다. 그것이 소나무 없는 강릉을 상상할 수 없다는 웅변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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