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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가 방폐장 유치에 성공해 잔치 분위기를 연출하던 날, 기자는 그들의 선택과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었다.
 '경주∼방폐장'이라는 어감이 던져주는 개운치 않은 부조화 때문이었다.
 언필칭 '천년 고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경주는 아무래도 방폐장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로 보였다.
 그러나 작금, 국내 최대 역사문화도시인 경주가 처해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경북지역 한 신문에서는 "빛나는 천년유산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좌절과 침체의 늪에서 허덕여 왔다"고 경주의 현실을 통렬하게 대변했다.
 경마장, 태권도공원 등 대형 사업 유치에 잇따라 실패한데다 최근에는 대구∼포항에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그나마 찾아오던 관광객도 발길이 뚝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렸다.
 방폐장이라도 유치해서 경제적 활로를 찾으려 할 정도로 침체 위기감이 컸다는 것이다.
 경주의 이같은 위기를 비슷한 도시 성격을 가진 강릉에 대입해보자.
 강릉은 국보·보물 25개, 도 문화재 52개, 문화재 자료 27개를 보유, 도내 전체 문화재의 22.1%가 몰려있는 전통문화도시다.
 여기에다 단오제와 강릉 농악, 학산오독떼기, 하평답교놀이, 방짜수저 등 국가 및 도 지정 무형유산도 즐비하고 그 맥을 잇기 위해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도 10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땅속에도 문화재가 지천이어서 시쳇말로 삽질만 하면 유물이 쏟아지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강릉이 문화 연계 주력산업으로 키워야 할 관광 활력의 현실은 어떤가.
 관광 1번지인 경포도립공원은 자연공원법 등의 규제에 묶여 6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해 아직 변변한 콘도미니엄 조차 없는 것이 강릉의 현주소다.
 골프장도 사업성에 확신을 갖지못해 무려 10년을 끌어오다 사업자가 바뀌는 등 천신만고 끝에 내년 6월 회원제 18홀 개장을 앞두고 있다.
 여름 피서철에 1100만명이 대관령을 넘어온다고 하지만, 체류형 놀이 시설이 여의치않아 1박도 제대로 않고 스쳐 지나가는 피서객이 태반이라고 업계에서는 아우성이다.
 반면에 문화재 보호·전승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비용과 부담은 힘겨워 재산권까지 제약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석기∼청동기∼신라시대 고분과 유물의 보고인 초당동에서는 개인 건물은 물론 허균·허난설헌 자료관 신축도 제동이 걸려 대체 부지를 물색해야 하고, 심지어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중앙동도 비좁고 낡은 동사무소를 옮기려다 강릉 읍성 유구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반경 500m 이내에서는 건물 신축이나 증·개축때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문화재들이 곳곳에 즐비해 각종 행위때마다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은 "문화재 보호·전승 등 규제와 의무만 있는 역사문화 도시들에게 국가적 지원과 관광개발 규제 완화 등 반대급부성 성장 동력을 제공해주는 조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역사·문화가 주민과 상생(相生)의 에너지를 향유토록 '권리'를 부여해 달라는 것이다.
 강릉시의회가 최근 경포도립공원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권리와 맥을 같이한다.
 더 나아가 오는 25일에는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걸작 등록을 위한 최종 심사대와 발표마당에 선다.
 고정 구조물도 아닌 무형유산이 인구 23만 지방도시 민초들의 힘으로 천년 맥을 이어온 것은 전율할 일이다.
 이쯤되면 우리에게 권리를 달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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