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위정자들은 사재를 털어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그들이 오늘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로마 영역내에 얼마나 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짓고, 도로를 닦아 헌납했는지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 몇권만 읽어보면 당장에 확인할 수 있다.
 그 인공 시설물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밑거름이 됐고, 오늘날도 연간 수억만명의 관광객이 쌈짓돈을 로마 영역내에 뿌리는 거대한 관광경제를 창출해내고 있다.
 유럽은 "조상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도 2000년전 로마인의 이같은 창조적 시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 강릉에 환갑을 넘긴 한 목수가 있다. 평생 전통건축 외길을 걸은 장인(匠人)이다. 궁궐 도편수 신응수(申鷹秀·64)씨. 세상은 그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대목장) 칭호를 부여했다. 구한말 전설적 장인이었던 최원식 선생으로부터 조원재, 이광규 선생 등 우리나라 대목장의 계보를 잇는 목수다. 1961년 국보 1호 숭례문 공사 참여에 이어 1970년 불국사 공사 부편수를 맡고, 1975년 수원성 복원 도편수를 시작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숱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그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수년전부터 강릉에 '한국 전통건축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시청에서 구체적인 계획 보고회를 열기도 했다. 경포 지구 7200여평에 상설전시관, 양반가옥, 체험관, 공예전시관, 실내공연장, 공예학교와 야외실습장, 민속 찻집 등을 갖춰 대관령 금강소나무 숲을 끼고 있는 국내 최대 ‘소나무 고장’ 강릉의 문화 관광 교육 명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본인이 200억원을 직접 투자하겠다는 뜻도 밝힌 상태다. 그러나 5년 계획으로 한국건축박물관을 전통문화도시 강릉에 건립하겠다는 이 계획은 지금 다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매입한 부지가 아직 300여평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부근 2만5000∼3만여평을 무상제공하겠다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고, 지난해에는 관련 세미나까지 개최했다. 최근에는 그의 고향인 청주시에서도 좋은 조건을 약속하며 박물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강릉에 평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그의 계획이 자칫 수포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초조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이다.
 소나무 고장 강릉에 대한 신 대목장의 애착은 남다르다. 90년대 초에는 아예 주소를 옮기고 목재소까지 설립, 강릉사람이 되기를 자처했다. 필자는 그런 장인이 강릉에 있다는 것 자체가 관광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를 만나러 강릉을 찾는 전통 건축인들이 몇명이고, 목수 지망생들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명사 한명은 웬만한 관광자원을 능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 대목장은 평소 “강릉은 좋은 소나무의 산지며, 궁궐 장인으로 평생을 바친 나에게 제2의 고향”이라며 “그간 목수의 길에 대한 감사 표시와 사회 환원의 의미를 담아 관광도시 강릉에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후계자들을 길러내는 요람을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말해왔다.
 오죽헌, 선교장, 경포대로 이어지는 강릉의 역사문화·관광지구에 유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통 건축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관광·견습생들이 들끓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신 대목장은 그의 저서 ‘천년 궁궐을 짓는다’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는 고사하기 전 목재로 쓰이면서 다시 천년을 산다”고 했다. 부지매입 난제 등을 타개하기 위해 강릉시의회가 강릉시와 함께 구성키로 한 '한국 건축 박물관 유치추진위'가 소나무에 천년 생명력을 불어넣는 목수처럼 강릉발전에 해법을 찾기를 소망한다.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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