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록 서울본부 정치부장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집적단지)가 들어섰다.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직접 고용효과 2만5000명 등 10만명 내외의 인구유입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준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공장부지 결정이 국무회의에서 어렵게 결정됐는데 이 자리에 와 보니 잘된 결정"이라고 밝히고 "이 공장의 준공은 한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축복의 자리"라고 찬사를 보냈다.
 비록 수도권이지만 대규모 고용효과를 내는 공장을 건설한 것을 두고 비수도권 주민들이 굳이 그 의미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수도권이 국가경쟁력을 이유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형국에 비해 빈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지방은 여전히 수도권의 규제완화가 숙제로 남아 있다. 시도별로 12∼13개의 공공기관을 전리품으로 갖고 있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인가 김진선 지사와 비수도권 광역단체장들은 파주공장 준공식 직전인 25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의 원칙 없는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수도권과 지방이 동반 추락하는 등 국가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같은 대립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이 논란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강원도는 지난 2000년 국제적인 완구회사인 레고랜드의 테마파크 유치를 위해 경기도와 대립했다. 경기도는 레고랜드측과 이천시에 테마파크를 건설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했으나 강원도는 원주시 유치를 위해 결사적으로 막았다. 결과는 양측 다 실패로 끝났고 레고랜드는 외국으로 떠났다. 이로 인해 양 도는 거의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도 강원도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최소한 법적으로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막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참여정부 들어 해외자본 유치와 국가경쟁력 등을 이유로 수도권에 첨단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고 향후 지방분권 속도에 맞춰 수도권 규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수도권은 짭짤한 현찰을 챙기며 실속을 차리는 동안 지방은 실속은커녕 전형적인 뒷북 형태의 '성명서' 정치로 일관해 왔다.
 정부나 수도권을 향한 대응논리도 마찬가지다. 지방은 수십년간 수도권규제가 완화되면 지방이 죽는다는 논리를 제시해 왔다. 약간의 동원된 수치만 달라지고 보고서만 두툼해 졌을 뿐 결론은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속에는 애초부터 지방의 역할이 없었다. 이 논리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중앙을 설득하고 이를 정책화 하기 위해서는 '지방이 죽기 때문'이라는 자학적 수식으로는 더 이상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한 정부정책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를 지방의 정책 속에 반영하려는 보다 철저한 역사의식과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수도권 규제완화가 지방을 죽일 수 있을 지 몰라도 수도권 규제를 강화한다고 지방이 사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지방이 사는 문제가 수도권 규제완화와 어떻게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지 여부는 그 시스템 자체가 명확지 않을 뿐더러 국민적 동의를 얻는 절차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러는 사이 지방은 규제완화를 비난하는 주장에 스스로 매몰되고 안주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구호를 들여다보니 모든 후보들이 하나같이 변화라는 말을 제일과제로 내놓고 있다. 변화의 새물결이나 새로운 변화같은 것이 대표적인 구호다. 변화라는 말이 넘치면 바뀌는 것을 느껴야 하는데 오히려 변화의 공허 혹은 변화의 정적으로 와닿는 것은 돌아보는 현실이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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