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록 서울본부 정치부장

 한국사회는 뿌리 깊은 이념 대립을 경험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이관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사회가 안보에 대해 얼마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지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안보관과 국가관까지 들먹이며 "한미동맹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정부와 여당은 "안보공세는 냉전수구세력이 때만 되면 재발하는 고질병"이라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항변 중이다.
 사안마다 드러나는 이념갈등은 안보뿐만 아니다. 경제정책이나 교육, 과거사 규명이나 청산 등 사회 곳곳이 마치 미확인 지뢰처럼 위험요소로 가득차 있다. 해소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청와대 한 전직 비서관은 2002년 대선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지세가 적었던 노 대통령에게는 전세를 뒤집을 만한 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진보와 보수로 판을 나누는 것이었다. 당시 국민 상당수는 자신이 이념적으로 진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진보진영의 긍정적인 가치들을 믿었다. 결국 이같은 전략은 전세를 대등하게 끌고 나가는 효과로 나타났다."
 이념공세가 누구에 의해 촉발되고 이를 어떻게 활용했던 건 간에 참여정부는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아야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필두로 우리사회는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각종 개혁프로그램을 놓고 극심한 체제 내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 그것이 또 참여정부의 업보라면 업보였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자체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의 패인을 몇 가지로 꼽으면서 그 중 하나로 중도세력과의 결별을 꼽았다.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세력만이 개혁세력이라는 환상을 갖다보니 우리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도세력과 충돌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고민이 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윤호중 의원은 지난 10일 당내 정책토론회에서 서구정당의 사례를 들며 "탈이념 중도화는 21세기 미래정당의 모습"이라고 밝히고 국민경선제 도입이 정당의 중도화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열린우리당의 '우향우'는 앞으로의 전망을 예단하기 어렵다. 그것이 상황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전방위적인 사회의 압박에 대한 소극적인 자구책 수준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유력한 보수전국지는 김근태 당의장의 중도를 표방한 최근 행보에 대해 "중도를 숙주로 기생하는 세력"이라며 본색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흔히 국면을 설명할 때 세력과 세력이 대등하게 충돌하는 지점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등한 게임이 되고 있는가. 겉으로는 좌우 이념대결 국면일 지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보수진영이 진보그룹을 향해 정체를 밝히라는 상황, 진보진영이 탈이념적인 가치중립을 주장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힘의 균형으로 봐서는 밸런스가 무너진 것 같다.
 문제는 이 균형의 추가 무너질 경우 우리사회에 어떤 결과를 낳을까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선에서 누가 후보로 결정되느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대선 또는 대선후보는 아마 그 균형관계 속에서 선택되어진 어떤 계기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복잡한 한미관계, FTA 체결, 양극화 해소, 정보통신분야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경쟁, 농수산업을 비롯한 기초 산업의 육성 등 크고 작은 현안들이 산재해 있다. 이 현안들은 이념대립이라는 단순구도에 포함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현재 진행 중인 이념논란은 이러한 저변의 중요한 논의들을 삼켜버리며 2007년 12월로 향하고 있다. 2006년 공간이 2007년에 포섭돼 있고 그 논의의 내적 구조는 수십년간 바뀌지 않고 있다. 다시 돌아보면 그 구조와 전개방향은 2002년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은 채 갇혀 있다.
 깊은 한 숨으로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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