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대폭적인 관세감축과 시장개방을 골자로 한 뉴라운드(가칭 도하라운드)채택은 기정사실화 됐고, 중국은 예상대로 WTO에 가입했다. 이를 우리에게 '위기와 기회가 같이 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1년 연속 풍년농사를 짓고도 농민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쌀을 뿌리며 거리로 나서고 있는 한국농업 현실에서는 사상 최고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는 2004년이면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유예시한이 만료되고 재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번 회의에서 유예조치를 연장하지 못할 경우 그동안 국내 쌀시장을 지켜온 무역장벽의 전면적인 관세화가 불가피하다. 이것만으로도 국내 쌀 생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우려가 충분하다. 설상가상 중국은 동북 3성의 쌀을 한국과 일본을 겨냥해 고품질화에 성공했으며, 수출장벽이 무너지기만 기다려 온 것이 사실이다.

쌀 농사를 포기하자니 식량안보와 수많은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고, 쌀 시장을 지키자니 통상마찰을 피할 수 없다는 그야말로 진퇴양난 상황이 최근 몇 년간 한국농업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 고민이 현실화된 셈이다. 문제는 중국시장이 개방됨으로써 주력농업인 쌀뿐 아니라 농업 전 분야에서 고민이 되고 있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제3의 무역 대상국으로 무역액이 전체무역의 8.6%에 이르고 있고, 이 가운데 농산물 수출수입량은 1억5천 달러 치를 팔고, 89억 달러 치를 사들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세계경지면적의 7%에 해당하는 9,479만 ha라는 잠재 생산성이 있다. 한국농업은 뉴라운드 다자간 협상이 출범하는 것만으로도 농산물의 추가 수입개방이 불가피해 진다. 지금 농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도 머리띠 문구는 추곡수매가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향후 추가수입개방시대의 대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농민들은 '거대한 경쟁자'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며, 자칫 국내 농업기반이 무너질 위험까지 안게 된 것이다. 앞으로 농산물 관세체계를 개선하고 탄력관세제도를 도입한다던가, 원산지 표시제 강화 등의 대응방안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농수산업의 기반이 유지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농산물에 대한 경쟁력을 육성하고 품질 고급화, 유통개선 등 다각적인 대책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책은 당연한 것이고, 정말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진지하고 미래지향적인 대책이 나와 줘야 한다. 지금은 농민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일이 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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