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동해항 앞바다에 일단의 백인들이 요트를 타고 나타났다. 말 그대로 일엽편주인 요트에 의지해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서부터 만리길 격랑을 넘은 러시아인들이었다.
 "어떻게 이 작은 배로 그 먼 바닷길을…." 놀라움 반, 호기심 반으로 통역을 앞세워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그들이 대화중에 불쑥 내뱉은 한마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좋은 바다를 가진 항구에 어떻게 요트 한척이 없습니까?" 그들은 그게 도리어 놀랍다는 투로 기자에게 반문했다. 대답이 궁해 이런저런 이유로 둘러댄뒤 벌써 8년이 지났는데, 며칠전 배달된 조간 경제신문이 머쓱했던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기게 했다.
 전남 함평·해남·완도군, 목포시 등 전남과 경남 자치단체들이 수십∼수백억원씩이 투입되는 요트항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조만간 '남해안 요트밸리'가 닻을 올릴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전남도는 이미 기존 마리나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여수를 포함 모두 20여곳에 요트계류장을 갖출 계획이고, 경남은 장기적으로 남해와 진해·마산 등 7개 시·군에 모두 1200척 규모의 요트마리나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하니 한려해상을 색색의 요트가 수놓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머잖은 것 같다. 그 기사가 눈에 뜨인 것은 사실 반가움과 기대보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럼 동해안은…." 하는 우려때문에 기사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요트는 해양레저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남해안 자치단체들이 지금 경쟁적으로 요트 마리나 투자에 나서고 선진외국의 요트 관련시설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다가올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해양관광수요를 유치하고 더 나아가 요트 건조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의 일환이다. 국내 요트 관광의 '메카'라고 자부하고 있는 경남 통영과 제주 중문조차 긴장한다고 하니 남해안 자치단체의 해양레저 선점 경쟁이 정말 예사롭지 않다. "국내에 요트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하며 자위할 수도 있다. 요트 인구는 아직 3만여명에 불과하고 보유 척수도 1000척이 채 안돼 우리나라는 아직 요트에 관한한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요트 인구가 무려 300만명에 달하고 요트 보유척수도 33만대를 넘는다고 하니 정말 천양지차다. 그러나 이런 통계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바다를 보는 시각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해도 스키, 골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듯이 고급 해양레저스포츠인 요트인구도 소득증가, 주 5일 근무제, 웰빙 바람을 타고 늘어날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신문에서 본 요트항 기사 때문에 기자가 조금 흥분했을 수도 있으나 동해안을 바라보면 안타까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해항을 비롯해 5개의 무역항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컨테이너 전용 부두 시설이 없어 도내 수출품의 62.4%가 장거리 부산항을 이용하고, 도내 항구를 이용하는 실적은 4.6%에 불과하다는 며칠전 한국은행 강원본부의 발표는 동해안의 안타까운 현주소를 더 실감케한다.
 고속도로가 북녘 반쪽을 제외하고 한반도 남쪽을 종횡으로 누벼도 아직 2차선 철도도 없이 이제는 그 옛날 '신작로' 수준인 2차선 국도에만 의존해야 하는 곳이 삼척∼울진∼영덕을 잇는 동해안이다. 사람들은 동해와 동해안을 말할때 '자원의 보고'니,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니 온갖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시대를 열고, 우리땅 '독도'를 품은 바다라는 것도 단골메뉴다.
 그러나 개발과 소득에 관한한 동해안은 이제껏 낙후를 벗어난 적이 없다. 가난이 대물림 되듯이 지역의 낙후성도 어느새 대물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마침 국회에서 '동해안광역권개발지원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노파심처럼 자꾸 걱정이 앞선다.
 최동열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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