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연 영동본부 취재부장

 '소나무들이 떼를 지어 들판 한가운데 서있다. 눈을 돌리면 또 한무리의 소나무숲이 보인다. 강릉이다.'
 벌판이나 마을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잡은 소나무숲은 강릉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수백년간 마을을 지켜온 경관림이자 바람을 막는 방풍림이면서 누구든 그 숲에 기대어 집 한채 지어 살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하지만 소나무숲이 위협받고 있다. 땅 주인이 누구였던 감히 손댈 수 없었던 과거의 신성함이 깨어진 현실에서 소나무는 한갓 '조경수'로 전락해 팔려나갈 위기를 맞고 있다. 소나무숲이 많아 마을 이름까지도 '소나무숲'인 강릉시 연곡면 송림(松林)리 마을 한 가운데는 100년이 훨씬 넘었을 잘생긴 소나무 37그루로 이뤄진 숲이 있다. 지난해 11월 땅 주인 김 모씨는 조경업체에 이들 소나무를 팔았다. 마을 주민들은 즉각 반발하며 소나무 숲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강릉시도 해당 소나무의 공익적 가치가 크다며 굴취 및 외지 반출을 위해 꼭 필요한 '극인찍기'를 불허했다. 하지만 땅 주인은 강릉시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으며 지난 3월 2일 도 행정심판위원회는 땅 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사유재산권'이란 법적 권한 앞에서 소나무 숲의 공익적 가치는 너무도 초라하게 무너져 내렸다. '소나무 숲을 지키지 못하면 송림리의 정체성도 사라진다'는 주민들의 절박한 마음을 대변하고 지켜줄 법이나 제도는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1895년 산업화에 의해 유적과 자연환경이 사라지는 딱한 상황에서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즉 국민신탁운동이 시작됐다. 시민 주도로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매입해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을 주도해 온 영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2년말 현재 전국 토지의 2.7%, 해안지역의 17%를 소유하고, 회원 270만명, 연간 예산 4000억원 규모의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영월 동강 제장마을 등을 매입·보전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현재 20여개 국민신탁 단체들이 활동중이다.
 정부도 신탁 자산의 면세와 법적 보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출연 및 지원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신탁법'을 제정,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31일 위기의 소나무숲을 경계로 이웃한 송림1·2리 주민들이 모여 총회를 하고, 소나무 매입을 위한 모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이까지 합쳐 170여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에서 모금하기에 소나무 값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이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결의가 모아졌다. 어린이들도 세상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섰으며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 소나무 지키기에 나서 온 강릉 생명의 숲이 후견인이 되기로 하면서 송림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이 움트게 된 것이다.
 송림리의 소나무숲에 닥친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비슷한, 또는 더욱 아름답고 값진 소나무숲은 강릉 어느 마을이나 있으며 문향(文鄕) 예향(藝鄕) 강릉에는 개발과 자본앞에서 훼손될 가치들이 산재해 있다.
 가장 먼저 위기를 맞아 힘겹게 버텨가고 있는 송림리 주민들의 결의와 세상을 향한 이 마을 어린이들의 호소에 대답하는 일만 남았다. 강릉시민이 1000원씩 모으면 마을 소나무숲 하나가 지켜질 수 있다.

남궁 연 영동본부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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