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교통사고 소식을 접한다. 고속도로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지만 통제가 쉽지 않은 속도는 끔찍한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속주행 중 사고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1차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혹은 사고 원인을 다투는 사이 벌어지는 2차 사고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재빨리 안전조치를 취한다거나 일단 큰 위험을 회피한 뒤 잘잘못을 따진다면 후속 피해는 당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강릉대와 원주대 통합 갈등은 어처구니 없는 고속도로에서의 2차 사고가 주는 전율을 떠올리게 한다. 강릉대와 원주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통합대학을 출범시켰다. 도민들의 기대 속에 한 학기의 학사일정을 마쳤다. 이제 좀더 속도를 내면서 통합의 정신을 실현하고, 그 효과를 실증해 보여야 할 차례다. 그러나 지난 한 학기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퇴행적인 행보로 실망감만 키워 놓고 말았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다자간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대학 통폐합은 저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 살을 깎는 아픔을 감내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구조조정의 과정을 먼저 거친 민간기업이나 금융권의 전례는 이 일이 얼마나 통렬하고 눈물나는 일인가를 말해준다. 피할 수만 있다면 그 혹독한 상황을 자청할 이유가 없다. 개혁이 뜻하는 바 구조조정은 살점을 떼어내고 피를 흘리는 처절함이 뒤따른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겠다는 것이다.
 적당히 미봉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낭만적인 대학 통폐합은 없다. 강릉대 원주대 양측은 마치 안 해도 될 일을 자의적 선택에 의해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하다. 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고행의 길로 뛰어들었는가. 통합대학은 지난 한 학기 동안 교명(校名)을 확정짓지 못한 채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이젠 양 대학의 문제를 넘어 강릉 원주의 지역갈등으로 비화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것은 대학통합이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양 대학은 지난 해 공모를 통해 통합대학 교명을 1순위 강원제일대, 2순위 강일대, 3순위 명원대로 선정했다. 그러나 거점대학 소재지인 강릉의 거센 반발에 교명을 확정하지 못한 채 통합대학을 출범시켰고 한달 여 뒤 교육인적자원부에 교명 승인신청을 했다. 수순착오의 우를 범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또한 적법 절차를 통해 제출된 교명 승인신청에 대해 여론을 재수렴토록 하는 어정쩡한 결정을 내렸다. 교명갈등은 부실합의를 한 양 대학이나 단호하지 못한 당국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주지역의 뒤 이은 반발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최근 원주캠퍼스에서 통합대학 현판이 철거되고, 교육부를 상대로 대학 교명변경 불승인 취소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갈 데까지 간 셈이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양 대학의 통합이 애당초 잘못된 조합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원주~강릉은 이미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이고 철도까지 연결되어 내륙과 해양의 독특한 장점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합은 존립을 위해 어느 쪽도 회피할 수 없는 길임을 환기해야 한다. 더 이상 명분에 집착하다 내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중부권 거점으로 부상하는 원주와 동해안의 중심을 자처해 온 강릉이 상생과 호혜의 정신으로 생산적 관계를 정립해 가는 데 양 대학의 통합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교명 갈등이 지역에 대한 무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점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내 손에 쥔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상대와 진정한 악수를 나눌 수 없다. 이렇게 머뭇거리다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학 통폐합의 격랑 속에서 경직된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화근이 될 수 있다. 씨름판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위험이 몰려오는 것도 모른 채 샅바싸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지금의 교명갈등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 될 가능성도 상정해 봐야 한다. 양 대학의 통합이 최종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는가. 지금 현실은 교명을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순진한 애향심이나 이미 약속한 것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형식논리에 대학의 미래를 의탁해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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