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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0년대 중반 이후 80년대까지는 미국이 죽을 쑤던 시절이었다. 월남전 패배로 주도권 상실, 경제 후퇴 등은 이등 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미국에 불러일으켰다. 일본 경제가 미국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갔고, 미국의 자동차 노동자들이 일본제 자동차를 해머로 내리치던 장면이 언론을 장식하던 때였다.
 그 무렵 일본은 '88나고야올림픽'을 거의 성사시켰는데, 일본의 추월을 경계한 '미국의 유대 자본'이 서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막후에서 손을 쓴 결과 '88올림픽'이 서울로 낙착됐다고 한다. 확인할 수 없는 하나의 설(說)이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의 때는 2009년, 조선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이고 동아시아 일대는 일본제국으로 통합돼 있다. 이런 가상 역사를 설정했으므로 영화는 '88서울올림픽'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88나고야올림픽'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오락물이지만, 한 국가의 역사 전개를 얘기할 때 올림픽이 빠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올림픽이 이토록 중요한데, '88나고야올림픽' 유치에 올인한 일본을 따돌리고 '미국의 유대 자본'이 IOC위원들을 녹여 과연 우리 서울 편을 들게 했을까? 당시 우리 유치위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정황상 그럴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돈이 올림픽 유치를 결정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 '2014동계올림픽' 유치전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자본'이 평창 쪽이었던 IOC위원을 홀려, 우리 유치위가 과테말라에 가서 악수를 해보니 그가 이미 등을 돌렸음을 느끼겠더라는 얘기가 나온 것, 러시아 수송기에 실린 물건들이 동향 파악을 위한 통신장비였다는 설, 푸틴이 IOC위원마다에 책임자를 붙이고 다시 그 뒤를 KGB가 따르게 하여 자본의 이동을 확인토록 했다는 설도 나왔다. 이 모두 다만 설이다. 설이되 가슴 쓰리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언제부터 인류가 이렇게 타락했던가? 90년 초 미국은 걸프전 승리로 재정 적자를 반전시켰다. 전쟁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미국이 도덕성을 내팽개쳤고, 전쟁을 통한 경제 질서의 재편을 '신자유주의' 논리로 얼버무렸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 무역이 횡행하던 식민시대 망령의 부활인 셈이다.
 이 타락한 방식을 이번엔 러시아가 쓴 듯하고, 이후 1018년을 위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 또 다른 의도로 10 년 침체를 넘어선 일본이, 뮌헨을 내세우는 독일 또한 쓰지 말란 법 없음에 주목하게 된다.
 이제 이 몇 가지 설(說)에서 설(舌)로 넘어가 보자. 유치에 돈이 문제였듯 유치 이후에도 돈이 문제다. 평창의 22조 원 창출 얘기는 수익 부분만 강조한 측면이 강하다. 부산 아시안게임, 인스브르크 동계, 나가노 동계 등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 상암경기장만 제외하고 국내 월드컵 경기장이 한해 20~30억 원씩 손해보는 중이다. 환경 훼손에다가 환상을 심어 놓은 선출직들의 임기 중 유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여기에 스포츠 쇼비니즘이나 울트라내쇼널리즘 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지역주의가 힘을 보태 돈에 관한 객관적 자료 제시 없이 유치 열기만 부채질하고 있다.
 올림픽 정신이 숭고하고 동계 유치가 지역 발전의 수단이라는 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누가 깃발을 쳐들면 와 하고 달려가는 여론몰이에는 동조할 수 없다. 강원도 사람을 바위 아래 늙은 부처라 했다, 과거엔 경륜 있고 진중하여 마치 바위 같고 부처님 같았는지 몰라도 지금은 다만 냄비다. 깊이가 없다. 깊이 부재의 사회가 돼 버렸다.
 유치 실패 이후 명쾌한 담론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강원도의 주류 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의 문제 의식의 이 낮은 수준이 안쓰럽다. 더 깊이 논의하고, 실패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성급하기만 하다. 강원도를 웅숭깊은 사회로 만들어 보자. 그러면 길은 자연히 열릴 것이다.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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