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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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남북 정상회담은 기대와 우려의 상반된 파장을 동시에 던져 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적지 않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일대 전환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정 정권이나 지도자의 안목, 결단의 수준을 넘어서 최근의 동북아정세, 나아가 더 큰 역사의 순환론적 필연과도 우호적으로 교직(交織)되는 그 절묘한 시의(時宜)에 주목하게 된다.
 2007 남북정상선언은 이 같은 배경에 대한 총론적 이해와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방법론적 혹은 결과론적 오류와 미숙(未熟)을 지적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번 정상회담의 담론과 결론이 서방(西方) 일극(一極)의 좁은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아직 남북관계의 특성상 구체적 실무적 사안에 대한 결실보다는 총론적 대국적 이해와 신뢰의 문제를 더 심화·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절박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너무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 같은 결과는 남북관계가 기본적으로 지닌 특수성 내지는 불가피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폭넓은 성찰과 사색, 종합적 다각적 다층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투철한 안목과 맹렬함의 부재에 기인하고 있다는 혐의가 보다 짙다.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은 지나치게 서울∼개성∼평양을 잇는 경평축(京平軸)에 집중돼 있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가 민감한 동북아 및 국제정세를 감안하고 분단과 이산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적 과제를 풀어 나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역적, 공간적인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접근방식과 결과가 민감한 부분, 발등의 불을 끄는데만 급급한 양태를 취함으로써 오히려 향후 관계 발전의 지속성 안정성을 소홀히 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로 2007년의 현실상황이 요구하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이나 지속 가능성,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균형과 채널의 다양성에 대한 좀더 진지한 고려가 필요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관계는 꾸준히 진보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른바 소떼 방북을 통해 낡은 이념과 고정관념의 얼음벽을 깨면서 물꼬를 텄고, 이후 금강산관광은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이 돼 왔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냉탕 온탕을 오가고 때로 군사적인 충돌을 불사하는 데까지 악화되기도 했지만 금강산관광은 남북교류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더이상의 퇴보를 막는 지지대 역할을 해 왔다. 금강산관광은 민족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었고, 단절과 좌절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징표였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자 민족적 목표에 대한 천착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고(至高)한 공동의 목표와 선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한때 남쪽 관광의 상징이었던 설악산이 쇠락하는 역풍을 만났다. 금강산관광은 금강∼설악이 하나의 벨트를 형성하는 상징적 인식의 전제 속에 추진돼 왔지만 결과적으로 금강산 개발이 설악산의 문을 닫아버리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이자, 가장 나쁜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 것이다. 남북교류 협력의 한 상징으로서의 ‘설악산’은 이제 통일시대로 가기 위해 남북이 함께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산이 돼 버렸다. 이를테면 ‘설악산’은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깊은 고려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그 결과가 반증한다.
 그러나 남북의 본격 교류협력이 10여년의 고갯길을 넘고 있는 대전환의 길목에서 이른바 ‘설악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민적 화합의 추동력을 얻기 어렵고 결국 보다 높은 수준의 질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이상 남북의 교류협력사업이 스스로 동력을 생산하지 못한 채 제로섬의 함정에서 답보·정체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요구다. 호혜와 상생의 생산적 역동적 교류협력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분단의 상징이자 현장인 강원도가 이 거대한 통일의 담론에서 소외의 길을 걷도록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개발연대의 경부축(京釜軸)을 통일연대의 경평축으로 환치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 것은 원대한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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