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실장

천 원짜리 우리 지폐엔 퇴계 이황 선생이 그려져 있고, 오천 원짜리 돈엔 율곡 이이 선생이 담겨 있다. 시쳇말로 ‘얼짱’은 아무래도 이율곡 쪽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나라의 임금인 세종대왕이야 만 원권에서 그야말로 준수한 용안을 보이고 계시지만, 어찌하여 이퇴계 쪽은 이율곡보다 좀 덜한 얼굴 모양새를 하고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은 이러하다. 이황은 평생 만성 위장병 환자였기에 영정처럼 얼굴이 늘 좀 피폐한 상태로 지냈다는 것이다.

그러면 율곡 이이는 지폐에서처럼 과연 그렇게 잘 생겼던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오죽헌을 방문할 기회가 적지 않았는데, 그 무렵 문성사에 들르길 마다 않았다. 지금처럼 성역화하면서 시멘트로 짓고 단청을 한 그 문성사가 아니라 조그만 기와 사당이었는데, 어두침침한 그 사당 안에 율곡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곳이 으스스했다는 기억을 더듬을 따름 그 영정을 떠올리지 못한다. 뒷날 오죽헌의 소유주였던 귄 씨 집안으로부터 들은 얘기로, 그 자리에 있던 율곡의 영정은 일제 때 일본화가가 그린 것으로 그 생김생김이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뻐드렁니도 조금 내비치고 있었다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오천 원짜리 지폐에서 보는 율곡의 얼굴은 한국화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이른바 표준영정을 옮긴 것이다. 김은호 화백은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영정도 그렸다. 저 군부독재 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성현 율곡을 시대의 스승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할 무렵에 말이다.

지금 필자가 논하고 싶은 것은 어찌하여 표준영정을 만든 이가 굳이 이당이어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이만큼 수준 높게 인물화를 그려낼 화가가 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지라도 왜 하필 친일화가로 소문이 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겼는가 하는 것이다.

이당 김은호란 어떤 사람인가. 1937년에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으로 있었던 사람이다. 그의 적지 않은 제자들도 오늘날 친일화가로 비판받고 있다. 월전 장우성도, 운보 김기창도 그렇다. 이들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황국신민의 영광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개최된 ‘결전미술전람회’에 ‘적진육박’ 등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 친일 행위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한국미술사에 한 몫을 담당했음에도 시대에 저항하여 죽어간 많은 선열을 생각하면 쉽게 허락할 수 없는 인물들이 분명하다.

친일화가 이당의 제자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의 영정이 표준영정으로 되어 있고, 같은 제자 김기창이 그린 세종대왕의 영정이 만 원짜리 지폐에 올려져 있으며, 이당의 또 다른 제자 현초 김윤태가 그린 이황 영정이 역시 지폐에 모셔져 있다. 그러고 보면 이건 분명 우리 현대사의 한 비극이다.그리하여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논개의 영정이 싫다 하여 진주시는 지난 2001년에 논개 표준영정 현상공모를 하게 된다. 또 그리하여 지난 2005년부터 문광부표준영정심의위원회는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 열사의 영정을 파기하고 윤여환 교수에 의해 그려진 새 영정을 표준영정으로 채택하려 한다.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문화계 대표적 친일 인사로 꼽혔던 인물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표준영정이 또한 논란을 빚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디자인 확정 때까지 이 문제를 심사숙고해 보겠다.” 한다.

훌륭한 인물을 낸 우리 강원도로서야 신사임당을 새 지폐 도안 인물로 선정한 것을 양손 들고 환영하지만, 신사임당으로서는 자신의 얼굴이 군부독재 시대의 여성 인물 육영수를 닮았다든가, 대표적 친일화가가 그렸다든가 하는 논란 대목에선 좀 찜찜한 심정이 될 듯도 하여 문화관광부 당국에게 ‘나 신사임당의 표준영정 재선성을 허하라’고 요청할지도 모른다.

덧붙여 제언하고 싶은 것은 퇴계의 경우처럼 그 리얼리티한 율곡 이이의 옛 영정이 어느 한의원에 명의 허준으로 오해되어 걸려 있더란 소문도 있고 하니, 이참에 본격적으로 찾아봄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