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육당 최남선은 단군시대 이래 조선왕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 인물들로 내각을 구성해보면 어떨까하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최남선은 고심 끝에 다음의 인물들로 조각을 했다. 국무총리는 고구려의 900년 사상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을파소를 기용했다. 그는 압록강하구에서 농사를 짓던 중 고국천왕의 부름에 여러 차례 고사 끝에 재상이 되어 진대법을 시행해 농민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펴 태평성대를 이룩했다. 또 외무장관에는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고려의 서희, 육군장관에는 고구려의 을지문덕, 해군장관에는 조선조의 이순신을 내정했다. 재경부 장관에는 부여의 명위고, 법무는 기자조선의 왕수긍, 내무는 단군시대의 치산치수의 공을 세운 팽우, 공상부는 발해의 임아상, 교육은 신라의 설총, 농림장관에는 백제의 홍우를 각각 임명했다. 이밖에 감사원장격인 대사헌과 국립대 총장격인 대사성에는 조선조의 조광조와 이퇴계를, 상원의장에는 단군시대의 신지, 하원의장에는 이율곡을 각각 발탁했다.

최남선은 이 같은 내각구성안을 3·1운동 1년 전인 1918년 6월 자신이 발행하던 ‘청춘’잡지에 ‘기인비관(其人備官,인재를 배치해 본다)’이라는 제목 외에 ‘가장 뛰어난 인물들로 조각해본다’라는 뜻의 만고도목(萬古都目)이라는 부제를 붙여 쓴 글에서 밝혔다. 슈퍼드림 내각을 꾸민 것이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첫 내각인선으로 진통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초 내정했던 15명의 각료 중에서 통일, 여성, 환경 등 3명이 여러 가지 불법과 부도덕한 의혹으로 낙마했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 등의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 같은 새 정부의 출범 직전·직후에 무려 3명의 각료내정자가 자퇴한 것은 한마디로 인선 때 검증과정이 부실하고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이 인성검증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2만5000명의 정부인사 파일이 기록보존소로 이전되어 수작업식으로 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으며 전 정부가 검증지원을 제의했으나 보안유지관계로 사양했다고 한 해명은 일단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첫 각료인성이니만큼 최대한 검증에 나섰어야 했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파동을 보고 앞의 정부와 별로 다를 것 없지 않느냐며 실망한 것은 그만큼 새 정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선파동에 청와대가 대변인을 통해 사과한데 이어 이 대통령도 지난주 말 “우리 자체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검증의 부족·부실을 시인한 것은 당연하다. 앞의 몇 정부가 갖가지 과오와 흠이 있음에도 식은 죽 먹듯 해 국민을 개탄했음을 감안해 두 번 다시 고위직 인사파동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고위직 인사에 앞서 능력·경륜·탈법·탈세·사생활·도덕성 등을 조사확인 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투기 위장전입 탈세 표절 부당행위는 공직자의 훈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정직하고 깨끗한 인물을 고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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