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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기계

백상빈 강릉아산병원 신경정신 과장

백상빈 2008년 03월 17일 월요일
   
백상빈  강릉아산병원 신경정신 과장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서이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가올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의 근저에는 일상생활의 불안이 깊게 깔려 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은 철모르는 어린아이 시기를 지난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불안의 연속이다. 즉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끔 운명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싫어한다. 조금의 불안도 없는 편안한 세상에서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판타지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말 현실에서 그렇게 되려면 다가오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읽고 싶다는 소망이 점차 현실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 버클리대 연구팀이 혈액의 흐름을 추적하여 뇌의 활동상태를 보여주는 ‘기능 자기공명영상(fMRI)’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뇌에서 일어나는 마음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초보적 장치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들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의 서두에서 향후 이 장치를 통해 “꿈이나 상상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정말 놀랄만 할 일이다. 누구나가 바라고 고대하던 환상의 기계가 지금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 이 기계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이 세상은 불안, 걱정이 없는 파라다이스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의 쾌거는 반드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제는 인간이 지닌 이율배반적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남의 마음을 정말로 알아내고 싶지만, 타인이 내 마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무도 그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주관성과 자기 중심성의 문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지능이 되고 교육을 받은 상태라면 객관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에서 학문을 공부할 때의 상황이고,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나 주로 주관적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어떤 상황에서건 우리는 자동적으로 일단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사회생활의 큰 덕목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며, ‘내 탓이요’ 운동을 강조한 이유도 역시 그것이 너무나 사회생활에서 지키기 어려운 덕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문제로 돌아와 어느 편이 더 좋을지 생각해 보자. 현재와 같이 서로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경우와 미래에 기계를 이용해서 서로의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는 경우, 어느 쪽이 더 좋을 것인가?

현재의 소망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읽고 싶은 것이라면, 앞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경우 예전에 없던 새로운 불안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타인이 내 마음을 읽는 데 대한 불안이다. 정신병적 상태에 놓인 정신분열병 환자의 경우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모두 읽고 있다고 확신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경우 너무나 심한 불안감에 잠도 자지 못하고 기분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만약 미래의 기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마음이 읽힐까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정신분열병 환자와 마찬가지의 고통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를 상상할 때 신통하게 잘 맞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모르는 게 약’이며 ‘아는 게 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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