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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과 정국

김기석 2008년 03월 21일 금요일
   
▲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회는 그야말로 권력의 시녀 혹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예외없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였고 따라서 대통령이 추진하는 법안은 여당이 장악한 국회에서 쉽사리 처리되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양당제라는 제도적 요인과 금권선거, 관권선거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에 가능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국민들은 북한의 위협이라는 특수 조건과 경제발전이라는 성과를 의식하면서 언제나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에게 안정적 다수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에 설복당했던 듯 싶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정우회라는 황당한 제도를 도입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자신이 직접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 같지만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한국 정치에서는 이런 억지가 통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한국정치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여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여소야대의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비록 노무현 정부 하의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가까스로 넘긴 것이 예외지만 이는 당시의 야당들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데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한, 말하자면 예외적 상황이었다. 여소야대 정국이 보편화된 것은 3김 씨가 지역주의를 토대로 각각 자신의 정당을 가지게 되었고 여기에 5공 세력의 정당마저 공존하면서 한국의 정당제도가 다당제로 바뀐 것과 연관이 깊다. 게다가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대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북한의 위협이라는 전가의 보도도 힘을 잃었다. 물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여당의 불법선거도 과거처럼 자행될 수 없었다. 그런 조건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소야대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낳았다. 한국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지만 아무리 강한 대권도 국회의 동의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권당은 정책과제들의 추진을 위해 국회 과반수 의석이 필요하였고, 따라서 3당 합당 같은 정당 간 이합집산이나, 의원 빼내오기 같은 무리한 수법을 동원해서 인위적으로 과반의석을 추구했으며 이는 결국 장기간의 정국 불안 같은 상당한 정치적 부작용을 낳곤 했다. 불과 3∼4주 전만 하더라고 이런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가 18대 총선에서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17대 대선을 통해서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불과 10퍼센트대 초반 이하에 머물러 있는 야당들에 대한 지지도와는 대비되게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50퍼센트를 웃돌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도 매우 높았다. 대선 직후에 제기되던 3분의 2의석에는 못 미치더라도 최소한 과반수 의석은 충분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예상은 점차 바뀌고 있다. 인수위의 과잉의욕과 섣부른 정책발표,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나온 조정 능력 결여, 장관 임명과정에서 불거진 철학부재 문제, 공천과정의 잡음, 그리고 최근에는 비관적인 경제전망으로 인한 경제대통령의 능력문제 등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문제점을 노정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리라고 자신있게 전망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의석수에 있지 않다. 그것은 토론과 타협 그리고 양보를 통한 원만한 국정운영 능력을 결여한 우리 정계의 무능력에 있는 것이다. 실상 이런 여건에서 한나라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장악할 경우, 지나친 밀어붙이기식 독주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며 반대로 야당이 과반수를 점했을 때 발목잡기만 성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 경우 모두 결과는 정국불안정이다. 의석분포가 어떻든 그것은 국민들의 의사다.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끈질기게 토론하여 합의를 도출해 내는 성숙한 정국운용 능력을 갖춘다면 의석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그런 눈앞의 정치적 계산보다 정책대결에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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