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동 헌 소설가(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 임 동 헌

소설가(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요즘 텔레비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MBC는 엊그제 ‘이산’에서 노비제도를 혁파하려는 정조의 개혁 장면을 내보냈다. 임금의 개혁안에 중신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채널을 돌렸더니 작고한 정주영 회장이 등장한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외국으로 건너가 배를 수주해 온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내세운 현대중공업의 광고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장영실과 세종이 등장한다. 장영실은 노비의 아들이었고, 세종은 그를 발탁해 과학자의 길을 걷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이쯤 되니 우리는 IT강국의 황금 시간대에 역류해 들어온 ‘과거’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정조 세종 정주영, 그들이 21세기의 한복판을 배회하는 것이 100%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텔레비전 화면 속에 왜 이들 장면이 등장해야 했던가를 곱씹어 보자는 것이다.

드라마와 광고는 가장 치열한 전선이다. 드라마는 시청률 게임이고, 시청률은 광고 유치의 무기다. 광고는 또한 매출 증대에 기여했는지, 기업 이미지 높이기에 기여했는지를 생존 바탕으로 삼는다. 다시 말하자면 광고 제작자와 드라마 프로듀서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지를 가장 예리하게 읽어내는 촉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그들이, 시대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내보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장의 중심에 서 있는 광고 생산자와 프로듀서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발상의 전환에 목말라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본심을 얘기하자. 대통령을 뽑아 놨더니 이번에는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단다. 공천 혁명이니 개혁이니, 말들이 난무한다. 의석을 과반수 이상 만들어 줘야 한다고 읍소하는 여당도,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야당도 안쓰럽다. 관념만 있지 구체어가 없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에게 접근하는 방식에 10원어치의 변화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 그들이,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국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장담하건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 정신을 유지하는 때는 선거 전후 30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상의 전환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권력은 한없이 달콤해서 발상의 전환에 모험을 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본심을 얘기하자.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을 거수기 정도로 생각하는 국회의원을 뽑은 사람들은 우리들, 유권자이다. 유권자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때 역시 선거 전후 30일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3년 11개월 동안 국회의원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국민들은 구체적으로 알려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 출신인가, 친인척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가 따위에만 궁금해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3년 11개월 동안 무책임한 의정 활동을 한 것에 대해 크게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 아닌 말로, 국회의원이 되면 목숨 바쳐 일하겠다고 약속하는 그들을 믿고 뽑았지만 실제 목숨 바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 않은가.

유권자가 국회의원의 활동을 4년 동안 꼼꼼히 들여다보았다가 심판하면 출마자들은 관념적 언어만으로 무장한 채 학연 혈연 지연에 호소하는 선거전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한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이 먼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소설가들에게는 ‘잘 읽어야 잘 쓴다’는 말이 화두처럼 따라다닌다. 여기에 기대어 말한다. 국회의원 세비 우리가 낸다. 잘 뽑아 잘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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