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 한 대기업의 광고 카피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 말은 베를린올림픽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옹이 20일 향년 89세로 사연많던 삶을 마감하던 순간 다시 한번 진실이 돼버렸다.

남옹은 1936년 8월9일 열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동갑내기 손기정옹과함께 메달을 따내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민족에게 한줄기 희망을 던졌던 '살아있는 역사'였다.

문제는 메달의 색깔.

금메달리스트인 손옹이 해방 이후 '민족의 영웅'으로 대접받아온 반면 동메달을받아쥔 남옹은 화려한 조명 속에 있던 손옹의 그늘에 가려 세인들의 관심 밖에서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육상 연맹 이사와 전남대 체육학과 교수를 지낸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이 없어 그늘을 더했다.

이 때문에 별명도 '은둔하는 영웅'이었던 남옹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1947년 보스턴대회에서 10위로 골인하는 등 꾸준한 선수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고 진정한마라토너임을 자부하며 살았다.

절친한 친구인 손옹도 "같이 고생했는데 나만 대접받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빚을 진 기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96년 가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60주년 기념식 때 후배 육상인들이 손옹의금메달과 똑같은 모양의 금메달을 제작해 남옹에게 전달한 뒤 마음속의 빚을 털어버렸을 정도.

그러나 지난해까지도 새벽에 조깅하며 건강함을 자랑하던 남옹도 지난달 폐부종,심부전증 등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병상에 누웠고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는 외로움속에 투병생활을 이어오다 결국 쓸쓸히 세상을 등졌다.

강남시립병원의 한 영안실에 안치된 남옹의 시신을 앞에 놓고 막내딸 순옥(53)씨가 한 말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아버지께서 손선생님의 그늘에 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1등이 대우받는세상임은 틀림없지만 마라톤 발전을 위해 노력한 아버지는 영원히 존경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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