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송나라 양공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양공의 적은 강을 건너면 곧바로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적이었다. 양공은 강을 건넌 뒤 전열까지 정비한 적에게 참패했고, 결국 본인도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양공을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그의 인정을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불렀다. 양공이 보여준 인(仁)은 오늘날 백과사전에도 ‘불필요한 인정이나 연민을 베풀다 오히려 호되게 당하는 꼴을 일컫는 말’로 풀이돼 있다.
과연 그럴까. 역사가 사마천은 다른 평가를 내린다. “인의가 땅에 떨어진 현시점에서 돌아볼 때 양공의 인(仁)은 지극히 고무적이고,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며 양공을 달리 봤다.
흔히 ‘전장’에 빗대어지는 총선 선거전이 한창이다. 경쟁 후보의 약점과 허물을 골라 공격하는 마타도어 ‘뺄셈 선거’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선거는 선거다. 도내의 경우는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내 피말리는 박빙 경쟁지가 유난히 많다.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선거전이 ‘선택의 날’을 향해 치닫자 상대를 겨냥한 각당과 후보들의 성명 공세도 가열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송나라 양공의 꼴을 면하기 어려운 후보들에게 인(仁)을 요구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되기 딱 좋은 형국이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이전투구(泥田鬪狗) 경쟁은 사마천이 살던 시대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하기에 양공의 인을 그리워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