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동 열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장면 1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양공과 관련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초나라 대군을 홍수(泓水)에서 맞은 양공은 “강을 건너면서 대오가 흐트러진 적을 쳐야 이길 수 있다”는 재상 목이(目夷)의 재촉에 “적이 곤란한 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은 군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며 전쟁터에서 군자의 도리를 내세운다.># 장면 2 <일본 전국시대에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이라는 다이묘(大名)가 있었다. 숙적인 다케다 신겐(武田信玄)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여야 했던 겐신은 어느날 신겐의 군영에 소금이 떨어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천금같은 정보를 입수한다. 그러나 우에스기 겐신이 내린 명령은 “적진에 소금을 보내주라”는 것이었다.>#장면 3 <제3차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슬람 세계의 왕 살라딘은 ‘사자왕’으로 일컬어지는 적장 리처드가 원정중에 병을 얻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치료를 돕기 위해 적진에 의사와 눈(雪)을 보낸다.>앞에서 든 세 장면은 동서고금의 역사상 전쟁터에서 적의 곤궁을 이용하지 않은 몇 사례들을 뽑아 본 것이다.명령을 들은 부장들은 아마도 “우리 지휘관이 지금 제정신이냐”고 쑥덕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에스기 겐신과 살라딘의 행동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면도 있다. 그들이 전쟁 중에 적의 풍모와 기상에 반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에스기 겐신은 다케다 신겐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까운 사내가 갔다”며 수저를 놓으며 슬픔을 표했다. 또 사자왕 리처드는 살라딘의 영웅적 모습에 반해 자신의 동생을 베필로 삼을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더욱이 적에게 ‘아량’을 베풀 때 그들은 결정적으로 위기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나라 양공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양공의 적은 강을 건너면 곧바로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적이었다. 양공은 강을 건넌 뒤 전열까지 정비한 적에게 참패했고, 결국 본인도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양공을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그의 인정을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불렀다. 양공이 보여준 인(仁)은 오늘날 백과사전에도 ‘불필요한 인정이나 연민을 베풀다 오히려 호되게 당하는 꼴을 일컫는 말’로 풀이돼 있다.

과연 그럴까. 역사가 사마천은 다른 평가를 내린다. “인의가 땅에 떨어진 현시점에서 돌아볼 때 양공의 인(仁)은 지극히 고무적이고,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며 양공을 달리 봤다.

흔히 ‘전장’에 빗대어지는 총선 선거전이 한창이다. 경쟁 후보의 약점과 허물을 골라 공격하는 마타도어 ‘뺄셈 선거’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선거는 선거다. 도내의 경우는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내 피말리는 박빙 경쟁지가 유난히 많다.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선거전이 ‘선택의 날’을 향해 치닫자 상대를 겨냥한 각당과 후보들의 성명 공세도 가열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송나라 양공의 꼴을 면하기 어려운 후보들에게 인(仁)을 요구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되기 딱 좋은 형국이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이전투구(泥田鬪狗) 경쟁은 사마천이 살던 시대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하기에 양공의 인을 그리워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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