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 정양리 왕검성(일명 정양산성)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대 산성중 최대급이며 그 축조연대도 5세기 후반 신라로 거슬러올라 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북대 車勇杰 교수팀은 최근 공개한 ‘영월 왕검성 실측조사보고서’에서 현재 남아 있는 성벽만 해도 높이가 최고 11.5m에 달하며 붕괴되기 전 원래 규모는 지금까지 최대 규모로 알려진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과 거의 같은 13m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라 자비마립간 재위 13년(470) 3년에 걸쳐 쌓았다는 삼년산성(둘레 1천680m)은 성벽이 현존 높이만 13m에 이르는 거대 성곽.

보고서는 또 왕검성의 축조 규모나 기법, 출토 유물 등이 삼년산성을 빼다박은 듯이 닮아 있음을 볼때 5세기 후반 신라의 성이었을 것으로 조심스런 추측을 하고 있다.

이번 실측 결과 왕검성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기존 성벽인 내성(內城 둘레 1천60m)의 한 부분에 고려 때로 추정되는 시기에 별도의 성벽(外城 둘레 570m)을 추가로 구축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기준으로 할 때 내성은 평균 높이 약 8m, 너비 7m의 초특급이며, 3곳에서 다락문 같은 현문(縣門)이 발견되고 있고, 성벽이 꺾어지는 3곳에서는 성벽 바깥으로 돌출하게 만든 시설물인 치성(雉城)까지 확인됐다.

車교수는 “유물발굴과 탄소연대측정 등을 해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조사결과로 봐서 400년대 후반 신라의 성으로 추측된다”며 “한강 상류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성터일 뿐만 아니라 유례가 없는 성벽과 문터, 곡성(曲城)과 치성, 그리고 후대의 외성과 차단벽을 갖춘 유일한 산성으로서 국가사적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학계는 왕검성을 고구려가 신라의 북상을 막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車교수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5세기 후반 신라의 영역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2호인 왕검성은 거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때 王儉장군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趙眞鎬 odyssey@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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