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동 열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먼저 질문을 던져본다. “삼척·태백·정선·영월 등 탄전지대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능했겠는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대한민국의 발전과 탄전지역이 무슨 관계가 있냐”며 반문하는 사람이 적지않을 것이다. 서구의 유력 신문들이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밖에 없다”고 평가한 것처럼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은 유별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더욱 실없을 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국민들이 맨주먹으로 일궈온 역사를 세계인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땅을 파고 뒤져도 석유 한방울 나지않는 분단된 나라, 6·25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53불에 불과한 극빈 상태에서 허리띠 동여매고 앞만보고 달려온 부지런한 국민들에게 밑천이 될 만한 자원이 있었다면 아마도 태백 탄전지대 석탄과 동해안 석회석 정도였을 것이다. 석탄과 석회석은 가난한 농가의 창고를 지키는 쌀 가마 처럼 지난날 고단한 개발시대에 버팀목이 돼 준 소중한 밑천이었다.

그렇게 지난날 탄전지역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한 뒤 다시 질문을 던져 본다. 삼척·태백·정선·영월 등 탄전지대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능했겠는가? 아마도 “매우 힘겨웠을 것” 이라는 답이 적지않을 것이다. 석탄과 석회석은 우리 국민들의 에너지 원천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은 그 자원 또한 쉽게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석탄은 노천탄이 아니라 수백∼수천미터 검은 땅속, 막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상상하기 힘든 노동의 대가를 치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자원이었다. 안개탄 분말이 눈앞을 가려 한치앞을 분간키 어렵고, 가마솥을 방불케하는 지열 때문에 한두시간만 일해도 온 몸이 땀에 젖어 하루 8시간 노동중에 몇번씩 작업복을 짜 입어야 하는 인간 한계의 현장을 24시간 3교대로 우리 아버지. 형님들이 지켰다. 어쩌다 앵앵 거리는 앰블런스 소리라도 들리면 온동네 어머니들이 모두 가슴을 졸여야 했던 그곳이 지금 우리가 탄전지대라고 부르는 곳이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희생을 치른 뒤에 얻은 자원은 발전소에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도시와 공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됐다. 겨울 초입, 뒷마당 처마밑에 연탄 수백장만 쌓여 있으면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불렀던 게 불과 20년∼30년 전이었다.

이쯤해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그렇게 피땀흘려 자원의 창고를 아낌없이 열어젖혔던 그곳, 탄전지대의 현주소는 어떤가? 대답을 하자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KTX 고속철도가 초고속 질주를 자랑하고, 첨단 지능형 고속도로가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는 ‘교통혁명’ 시대에 탄전지대는 아직도 곳곳이 ‘오지’라는 꼬리표를 달고산다.

수도 서울에서 가장 먼 곳. 외지와의 소통은 아직도 2차선 국도에 의존해야 하고, 지난날 전국으로 석탄과 석회석을 실어나르려는 산업적 필요에 의해 만든 철로 외에는 아직 철로조차 변변치 않아 고갯길에서 지금도 지그재그 ‘스위치 백’을 해가며 열차가 넘나드는 곳이 삼척 등 강원남부권 탄전지대다.

탄광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어찌해볼 도리없이 인구 또한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빼앗겨 인구 유입 촉진책은 지금 탄전지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렇게 개발시대 에너지 공급의 한축을 담당했던 삼척이 ‘에너지 메카’로 발돋움을 선언했다. 석탄과 석회석 자원의 보고인 이곳에 LNG생산기지를 세우고, 종합발전단지까지 유치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석이다. 지구촌의 21세기는 ‘에너지 전쟁’의 시대. 가난한 대한민국의 에너지 원천이 됐던 이곳의 ‘꿈’에 이제는 정부가 SOC 등 파격적인 에너지 인프라 확충을 통해 대답을 할 차례다. 삼척이 안고 있는 고통과 희생의 역사라면 그만한 권리쯤은 있지 않겠는가?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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