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시작된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한 검정작업이 끝나고 지난 3일 그 결과가 발표됐다. 그동안 우리는 검정을 위해 제출된 일본교과서의 한국역사에 관련된 왜곡된 내용을 지적하고, 이를 검정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일본측에 요구해 왔다.

특히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제출한 교과서의 내용이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지극히 일본 중심의 편협한 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왜곡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발표된 검정결과는 우리가 우려했던 것이 거의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라와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했다.’ ‘야마토 조정이 임나에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왜구에는 일본인 외에도 조선인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히데요시는 1592년 15만 대군을 조선에 보냈다’ ‘일본은 조선의 근대화를 돕기위해 군제개혁을 지원했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승리에 용기를 얻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내셔널리즘이 일어났다’ ‘한국내에 일부 병합을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본은 조선에 철도 등의 개발을 했다’ ‘미혼여성은 여자정신대로 공장에서 일했다’ ‘남경사건의 실태에 대해서는 자료상 의문점도 제기돼 여러가지 견해가 있고 오늘날에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패전후에 일본은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해 배상을 실시했다’등의 내용은 대표적인 왜곡내용이다.

이는 과거 한국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이 아니며 19세기말 이후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와 발전에 도움을 주었고, 일본은 2차대전 후 피해국가들에 배상을 이미 실시했다는 주장으로 너무나 명백한 역사의 왜곡인 것이다.

지난 1982년의 이른바 ‘일본 교과서 파동’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일부 교과서가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암살’로, 3·1운동을 ‘폭동’이라고 해 우리를 분노하게 했었다. 당시의 국민적 분노가 선열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마음으로 나타나 독립기념관이 국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되기도 했다.

이번에 검정된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그동안 일본인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반시대적인 우익 국수주의적 움직임을 반영해 지극히 자국중심적이고 오만하며 타국인을 무시하는 반평화적인 내용이 이전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증진에 기여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곡된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이번의 일본 교과서 왜곡과 관련해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 한가지는 정부의 대응 방법이다. 외교, 경제 문제와 연결돼 일본과의 우의를 저해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이해되나 언제 우리가 역사의 왜곡에 대한 비판과 시정을 주장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에 예속당하는 정도가 되었는가 걱정이다.

1982년의 사태 때만 하더라도 임시국회가 소집돼 왜곡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으며, 정부의 강력한 시정 요구로 그후 몇차례에 걸쳐 교과서의 왜곡된 내용이 우리의 요구대로 시정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어떠한가? 단순한 유감 표명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으며, 일본의 ‘검정 내용의 수정은 불가하다’는 오만함을 뻔히 바라다 보기만 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교과서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단기적 대책을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바란다. 일본 교과서의 왜곡 문제는 역사교과서에서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공민 교과서에도 상당 부분이 왜곡돼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반성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다수의 대학생들이 자기나라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도 졸업을 하며, 각종 국가 시험에서 국사 과목이 제외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또한 일본 문화 개방 정책에 따라 물밀듯이 소개되고 있는 일분문화를 아무런 비판없이 추종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하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깊은 고뇌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金興洙<춘천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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