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완

법흥사 주지
국민 경제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을 울리는 고금리 대부업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연 이자율이 60%를 넘는 경우가 태반인 이들 사채업자들에게 자칫 이자마저 물지 못할 경우, 가령 100만원의 원금도 1년새 이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1000만원이 훌쩍 넘어가 버린다.

상도덕은 이제 옛말, ‘흘러간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이들 사채업자들은 금융기관과 아무 관계가 없는 데도 관계업체인 양 사칭하는 광고를 버젓이 하고 있다. 제1금융권의 높은 문턱에 좌절하고 있던 자영업자나 서민들 중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로선 이들의 광고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무담보, 무보증, 신용불량자 가능, 서류 완비시 당일 대출 등의 문구가 돈을 빌리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순간부터 후회막심하다. 이해못할 고금리가 적용되니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막기에도 허리가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결국 고리 사채의 덫에 걸려 인간 이하의 수모와 굴욕은 물론 폭행과 납치를 당하게 되고 나중엔 신체 포기각서까지 강요당해 종말엔 한 가정의 몰락을 경험하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 사회의 병폐와 부작용으로 집단 문제가 되고 있는 고리사채업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기는 커녕 강건너 불구경하듯 방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겨우 한다는 조치가 불법 광고를 게재한 대부업체들을 적발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사정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입법부인 국회에서마저 서민들의 삶엔 별다른 관심조차 없다. 그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국민 저항을 당리 당략적 차원에서 이용하기 위한 정쟁에 몰두하고 있을 뿐 고리 사채에 패가망신하고 있는 서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현행법에 제재조치가 없으면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서라도 국민들의 고충을 덜어주는게 위정자들의 의무이지만 ‘법원칙’만 내세워 오히려 사채업자들을 두둔하고 있는 격이다. 참으로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서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고리사채는 언젠가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쩐의 전쟁’에 나오는 것처럼 희극적 상황은 아니다. 현실은 굴욕과 낭패와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진다. 한마디로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 돈 문제다.

이와 관련 불교의 경제 윤리를 살펴보는 것도 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가 비록 기원전에 탄생한 종교라고는 하나 불전에 의하면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적극적인 경제 행위를 강조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은 재원을 늘리기 위한 이자 활동도 장려하셨다. 이는 경제 활동가를 두둔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궁핍한 자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고 소위 재기를 위한 자의 종자돈을 의식한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중산층을 양산하기 위한 경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 국면에서 우리 서민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자립 경제를 도모할 수 있을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한다. 선량한 서민들이 더 이상 고리사채업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방치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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