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도계읍을 다녀왔다. 취재기자로 도계를 다시 만난 것은 12년 만이다. 흔한 말로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흘렀기에 도계도 적잖이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탄광촌 도계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변화가 없었다.

삼척에서 도계까지는 규정 속도로 30분이 넘게 걸렸다. 외길인 38번 국도가 태반이 2차선 구절양장이기 때문이었다.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려있는 곳은 삼척시 인근 미로면까지가 고작이었다. 이어지는 신기면과 도계읍의 외통수 길은 여전히 멀고 먼 2차선이었다. 삼척∼태백∼정선∼영월∼제천을 연결하는 38번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기사는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탄광촌, 도계읍 시가지 입구에 들어서니 ‘국내 최대 석탄생산지 도계’라는 이정표가 자랑처럼 서있다. 너나없이 고단하던 60∼70년대, 허리띠 졸라매고 앞만보고 달린 국민들에게 에너지 원천으로 끊임없이 힘을 제공했으니 도계의 이정표가 자랑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때마침 5일 장날. 장터는 읍사무소 앞 시가지 관통도로를 모두 점령한채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판을 벌인 상인들도 한가하고, 장터를 오가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읍사무소 직원에게 “장날인데, 별로 떠들썩하지 않네요?”라고 인사성 질문을 던졌더니 귀를 의심케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상주 인구가 너무 많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대답 뒤에 귀를 의심케 한 것은 그 직원이 구체적으로 던진 도계의 인구수였다. 1만2500여명. 그 숫자에 놀라 재차 되묻자 직원은 “그래요. 지금 도계 인구가 1만2500명 정도예요”라고 다시 친절하게 일러줬다.

12년 전 도계 인구가 2만6000여명이었으니 절반 이상이 줄어든 것이다. 아, 변한게 있었구나. 상전(桑田)이 벽해(碧海)한다는 10년 동안 가장 많이 변한게 인구 감소였다. 석탄 산업이 호경기였던 8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도계읍의 유일한 전통 재래시장인 ‘전두시장’을 찾아갔다. 썰렁한 시장에서 경기를 묻자 상인들은 주로 과거를 얘기했다. “탄광이 30개가 넘고, 인구가 5만명을 넘었던 적도 있었어. 그때는 장사도 정말 잘 됐지. 완행 열차가 한번씩 역(驛)에 들어서면 곧이어 사람들이 시장으로 밀려들었어” 등등. 시장의 시설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으나 상인들은 판자 좌판과 천막에 의지해 장사를 하던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있었다.

그 주민들이 지금 기대를 거는 것이 내년 3월 개교 예정인 강원대 도계캠퍼스다. ‘꿈’ 가득한 젊은 학생들이 새로 지어진 초현대식 상아탑을 채우게 되면, 도계가 폐광도시 아픔을 딛고, 지역 정체성과 활로에 새싹을 틔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기대에만 들떠있는 것도 아니다. 폐광지의 새 희망인 캠퍼스를 경쟁력있는 대학으로 만들고 지역경제 회생의 견인차로 삼아야 하는 게 지역사회와 학교의 공통된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칭 인기 학과 유치에다 장학금과 기숙사비 등 수십억원의 학사운영경비 지원 논의에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는 것도 차별화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몰려든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역 여건이 열악한 강원도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 대책을 시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구 감소, SOC 부재, 지역경기 침체 등등. 폐광지역, 도계의 고민과 노력은 오늘 강원도가 안고있는 모든 고민의 축약판이나 다름없었다. 강원도가 ‘경제 선진도, 삶의 질 일등도’ 꿈을 이루는 날은 폐광지 도계가 희망의 새역사를 쓰는 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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