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각

원주 성불원 주지스님
바다를 바라보면 파도가 해변을 부딪치고 나면 조금 후에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쉼없이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또 다른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것 같다. 수많은 일들과 사건·사고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세상사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일들에 묻히고 만다.

요즈음 일부 공직자의 종교편향 때문에 뉴스가 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유감표명을 하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공무원이 종교와 관련해 불공정 차별행위를 하거나 편파적으로 특혜 또는 불이익을 주는 경우 징계대상이 된다는 조항을 두게됐다. 어쩌면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규정으로 강제한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일은 배려(配慮)가 아닐까 한다. 특히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거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마음깊이 배려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하는 아름다운세상을 만들기 위하여는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종교인들의 이웃 종교에 대한 배려는 세계가 한 지붕이 된 21세기에는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16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민족의 정신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시절에 기독교가 이 땅에 전해지면서 교육과 의료·복지에 지대한 공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닮아가고 단점을 보완 한다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에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다녀왔다. 이곳은 6개 시와 2개 현을 묶어서 부르는 행정 구역이다. 이곳에 한국스님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신 두 분의 스님이 계시는데 바로 일제하에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분이신 백용성 스님과 수월 스님이시다. 그 중에 수월 스님의 행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수월스님의 일화를 전설처럼 기억하기도 했다. 수월 스님은 출생과 속가의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어린 시절에는 남의 집일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살았다고 한다. 출가한 이후에도 글을 몰랐기 때문에 책을 보고 공부하기보다 일을 하면서 마음 공부에 주력 했던 것 같다. 지금 연변으로 부르는 만주에서 머무실 때 많은 사람이 만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스님께서는 그곳에 아침 일찍 주먹밥을 만들어 나무 가지에 걸어두고 밤새워 짚신을 삼아서는 길가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그 곳에 이르면 누구나 배가 고프고 신발이 헤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배려인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해야 한다고 강조 한다. 누구를 도와준다는 생각조차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서로 부딪치고 짜증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마음 깊이 이해하는,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누구나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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