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창의 관동대 교수
세상은 불공평하다. 미·소로 양분되었던 세계의 균형도 이제는 깨졌다. 모든 힘이 미국으로 쏠려 있다. 이제 세계는 자본주의가 대세다. 게다가 브레턴우즈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미국 달러’가 세상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렸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없으면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하지만 미국은 달러만 찍어내도 간단히 해결된다. 지난 60년간 미국은 달러인쇄하고 소비하는 데만 열중하고 편한대로 살아 왔다. 미국은 금광보다도 더 편한 ‘달러공장’을 갖고 있기에 생각대로 하면 된다. 요즘 유행하는 ‘되고 송’이 딱 ‘미국 꼴’이다.

일본은 패전 후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팔아댔다. 그리고 이웃나라 전쟁들로 특수까지 누렸다. 그 덕에 많은 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85년 9월 22일, 미국은 일본에게 소위 ‘플라자 합의’를 강요한다. 엔화의 가치를 높이자는 것이 골자다. 결국 미국에 의한 ‘환율조작’으로 달러당 250엔이 졸지에 150엔으로 내린다. 미국이 일본에 진 빚도 반으로 탕감되고 일본이 사들였던 미국 내 고층 빌딩들도 가치가 반 토막이 나버린다.

이에 탄력 받은 미국은 무한질주로 달린다. 학교에서도 불량경제학만 가르치게 된 미국은 우수한 인재들에게 몹쓸 짓을 훈련시켜 월스트리트로 내보냈다. 엘리트라고 착각하던 ‘돈 놀이 재주꾼’들은 컴퓨터 하나로 전 세계 경제를 주물러 터트렸다. 달러중심체제가 세계의 재앙을 불러들인 셈이다.

미국사고방식에 오염된 우리나라도 금융계가 썩어가고 있다. ‘펀드’ 강권하던 은행직원은 반 토막 난 ‘펀드’에 “나 몰라라”하고, 욕먹어도 평균 연봉 1억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예금주 돈을 엄한 데 다 떼어먹고 먹혀도 나라에서 지원 받으면 되니까, 그들만의 잔치는 끝날 줄 모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식의 도덕적 해이도 심화되고 있다. 은행이 하면 금융공학 첨단기법이고 중소기업이 하면 다단계인가? 국회의원이 쌀 직불금 수령하면 멀쩡하고 차관이 수령하면 모가지인가? 본질은 다 똑같은 악질이고 하치인데, 한 쪽은 미화되고 구차한 설명이 많아지는 차이 뿐인데….

정부는 건실한 수출 제조업체가 망해가도 가만히 있다가 땅 투기꾼과 동류항인 건설회사는 구해주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립대에는 정부보조금을 퍼 부면서 값싼 등록금으로 보장해 주고 지방 명문사립대는 불공정거래로 고사시키는 것도 모자라 수도권 규제 완화한다고 난리다.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사람들은 외면하고 송장들만 찾아다니면서 침놓아 주는 심사를 모르겠다.

사회의 천칭 저울이 한 쪽으로만 자꾸 기울어질 때, 사람들은 바른 길로 가려 하지 않게 된다. 특히 청소년들은 “감옥을 가더라도 부자가 되면 좋다”하고 “나만 잘살게 된다면 지도자가 불법행위를 해도 좋다”는 막가파식의 부패에 오염되기 쉽다.

“환율을 올려야 수출이 늘어난다”, “부동산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 “금리를 인하해서라도 성장률을 높인다”… 사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초등 산수실력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풀겠다는 배짱과 열린 패를 월가의 생쥐들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걱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고 우드로도 퍼팅할 수 있다고 아무 때나 우겨대면 곤란하다. 지금은 2차원보다는 3차원적 사고를 해야 하고 스칼라량보다는 벡터량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국제금융체제를 위해 영국의 브라운을 따라 가든지 프랑스의 사르코지를 좇아 하든지 좋다. 그러나 기울어진 천칭을 갖고 출렁대면서 이리저리 뛰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국내에서는 실물경제의 균형을 갖추게 하고 대외적으로는 강약과 완급 조절을 할 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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