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연 소설가
산골짜기의 겨울밤은 깊고 춥고 길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깨어나 보면 아직 밤이니 돌배 술이 든 단지를 껴안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눈이 내렸기에 그나마 한 해가 가는 쓸쓸함을 조금 달랠 수 있을 정도다. 눈이 내리지 않는 산골의 겨울은 일 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삭막한 거니까.

다행히 적당한 시기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 12월에 첫눈? 모르겠다. 하여튼 깊은 밤 내리는 눈송이 하나하나는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나 같은 소설가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눈을 맞으며 이 나라의 정치 경제를 걱정할 리가 없다. 어떻게 하면 독한 달러를 벌 수 있을까 고민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쥐꼬리를 닮은 유가환급금이나 원천징수 당한 세금을 언제 어떻게 받을까 생각하다 제풀에 겨워 술잔을 기울일 뿐이다. 금강산 관광이며 개성공단, 북핵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바마의 향후 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다만…….

다만 영월의 만경대산 중턱에서 어린 아들과 아내와 함께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를 쓰는 가난한 시인이 가만가만 떠오른다. 그 시인의 벌통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을 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툇마루 밑에서 눈송이를 응시하고 있을 시인의 개가 그리워질 뿐이다. 그리고 시린 물안개가 올라오는 소양호의 어느 길옆에서 삭정이를 태운 온기에 기대 그림을 그리고 있을 화가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화가가 겨울 내내 그리는 그림이 화가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었으면 좋겠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눈 내리는 밤 속초의 아바이마을을 노래하는 시인들과 포장마차의 연탄불에 양미리를 구워 먹으며 밤을 지새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러다 지치면 동해의 푸른 길을 내려와 지금은 사라진 경포의 청파여인숙에 짐을 풀고 ‘강릉, 프라하, 함흥’의 시인과 함께 파도소리를 들으며 못다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면 되는 것이다. 소리 없이 눈송이를 삼키는 바다를 오래 들여다보면 족하지 않겠는가. 아니, 아니……정선의 골짜기에서 팔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소설가를 찾아가야겠다. 한밤중에 집에 불이 나 몸만 겨우 빠져나온 모자는 서로 다른 이웃집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지 않는가. 팔순의 노모는 오늘도 정선 장거리에서 산나물을 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자가 부르는 오래된 노래, 다슬기와 황기, 곤드레를 닮은 정선 아라리를 들어야하지 않겠는가. 눈물을 훔치며.

그러나… 나 지금껏 어찌 살아왔던가. 눈 내리는 밤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나 한번이라도 구세군 모금함에 동전 한 푼이나마 넣었던가. 연탄 한 장 들고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간 적 있었던가. 술자리에서만 목소리를 높였지 타인을 위해 따스한 밥 한 그릇 담아본 적 없지 않은가. 무엇 하나 나눠본 적이 과연 있기라도 한 것인지….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눈이 내렸다. 눈은 또 내릴 것이다. 첫눈이 내리기도 전 어느 깊은 밤 한 시인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눈 오냐? 술 마시느라 바빴기에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눈 오냐니깐? 귀찮아서 답신을 날렸다. 눈이야 늘 내리지요. 며칠 뒤 또 비슷한 시간에 문자가 날아왔다. 눈 오냐? 눈 기다리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고 답했다. 눈이 부처다. 소가 부처다. 이런 문자가 마지막으로 시인에게서 날아왔다.

그러니까… 눈을, 눈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더 있다는 얘기다.

세상이, 조금, 따스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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