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희 정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

▲ 고희정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
나는 내 아이를 7살 때 처음 때렸다. 매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 자신의 문제이고 어른들이 자기 부족으로 매를 든다고 믿었었다. 그래서 매를 드는 대신 인내심을 갖고 아이를 타이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결혼 초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를 때리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내가 먼저 깨고 말았다. 7살이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고 스스로 자기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나이임에도 고집을 부리며 화를 돋우는 아이의 머리를 머리빗으로 때렸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난생 처음 누군가로부터 맞은 아이의 눈빛이 순간 당황하며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차, 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것은 약속의 문제가 아니라 흔들리는 아이의 눈빛에서 한 인간이 자기 존엄을 잃고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면 지나친가. 후회하면서 다시 다짐했었다. 나는 절대로 내 아이를 때리지 않으리라고.

어제 저녁에 유난히도 자기 전에는 씻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양치질을 하고 자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고 급기야 투덜거리며 거친 몸짓으로 욕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돌려 세우고는 이마를 오른쪽 집개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밀면서 야단을 쳤다. 거실에 누워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순간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부모의 자존심에 아이에게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으며 아이와의 싸움은 끝났지만 내가 진 싸움이었다. 사과를 하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모에게 맞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맞은 이유에 대해서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부모님이 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부모에게 맞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부당하거나 억울함을 느끼면서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만이 아이 성장에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당함을 느끼는 아이 못지 않게 부모에게 맞으면서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맞는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폭력을 경험하며 인정하게 되면서 폭력을 내면화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가 내가 정당화시키며 행사한 폭력 하나하나를 용인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는 내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나에게 사과하도록 하였고 내 아이에게 엄마, 미안해요. 하게 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부모의 권위 앞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서는 것이 무척 싫었을텐데 내 아이는 고개 숙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순간 그런 아이의 모습 위로 내 아이가 자신에게 뿐 아니라 사회에 가해지는 폭력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당연하게 인정하는 끔찍한 모습이 겹쳐져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가정폭력상담소에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가해자, 피해자들이 매일 찾아온다.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가해를 한 행위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죄인 취급을 할 수만은 없다. 그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대개는 어렸을 적 부모나 형제로부터 폭력을 당해 본 경험들이 있었고 폭력에 대한 별다른 교육없이 자연스럽게 학습해 온 무기력한 또 한사람의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경험은 정신적으로 절대적인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대부분의 임상결론이다. 정신적 면역력이 전혀 없고 대인관계의 패턴이 부모나 어른들로 단순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절대 권위의 어른들에 의한 폭력의 영향은 치명적인 독소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 상황이 어떠한 의미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폭력을 당하면 의식적으로는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는 것인데, 일정한 시점에서 그 정신적 피해가 의식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후유증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학교폭력이 다시금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 생각해보아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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