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연 소설가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안개 자욱한 날 춘천 소양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도로변의 버즘나무는 가지가 모두 잘린 채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고 그 뒤 고만고만한 가게들은 대부분 빈지문을 닫고 있다. 빈지문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문이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네온도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간판에 지워질 듯한 영어로 씌어진 상호. 바로 ‘찰리 샵’이다. 그러니까 저 가게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얘기다. 가게 문을 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폐업을 한 건지는 그림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그 옆집 간판으로 시선을 옮긴다. 바로 거기에 화가의 전언이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숨어 있다. 그러니까 이 화가는 ‘사라지는 것들’이란 간판을 내걸고 안개만 쏘다니는 소양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안개 속의 저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춘천의 뒤편을 아시는지. 거기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아침저녁으로 뜨고 내리는 미군 부대의 검은 헬리콥터 행렬. 어두워지면 낯선 이국의 상호들로 불을 밝히는 소양로의 가게들. 그 가게와 가게 사이에서 시작해 산동네까지 뻗어나간 미로 같은 골목과 계단. 장미처럼 붉은 불빛을 골목으로 흘리고 있는 집들. 낯선 언어와 군화 소리. 우체국과 소방서 건물이 감추고 있던 눅눅한 풍경들이 미군 부대의 이전과 함께 지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 뒤편의 뒤편……봄이면 개나리, 목련 아득한 벼랑 위에 촘촘히 들어차 있던 산동네 판잣집들까지. 유학 시절 삼악산을 넘어와 북한강을 물들이는 노을을 상영하던, 연탄가스 풀풀 올라오던 내 좁은 자취방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불시착한 중국 민항기 구경을 갔던 그 기억까지. 땅속 깊이 오폐수만 남긴 채.

좋든 나쁘든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전설의 옛길이 사라지고 산맥을 관통하는 새 터널이 영동과 영서를 연결한 지 이미 오래다. 험한 고개를 넘는다는 감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바람과 안개, 눈을 훔쳐보며 터널 몇 개만 통과하면 어느새 강릉 땅인 것이다. 드나드는 손님들의 수많은 사연이 배어 있던 강릉 터미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언젠가 옛 터미널 건물 앞에서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어린 시절 대관령을 넘어와 처음으로 핫도그를 사 먹은 기억을 더듬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놀랐던가. 터미널 옆 좁고 컴컴한 동시 상영관에서 에로영화를 몰래 보는 나를 떠올리고 슬퍼했던가. 강릉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주문진을 시작으로 작은 마을들을 지나 양양, 낙산, 물치, 대포항을 거쳐 속초에 닿았을 때 거기 아주 낮게 떠 있는 갯배는 또 어떠한가. 배와 연결된 쇠줄을 끌고 당겨 아바이 마을로 가는 동안 머리 위를 선회하던 갈매기들, 그리고 갯배를 타고 청초호를 건너던, 주름 많은 실향민들의 얼굴은 아직 그대로 있을까. 그 작은 배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라지게 될까. 저 영월, 태백, 정선, 삼척의 검은 막장처럼 밭은기침을 토해내는 진폐증만 남긴 채.

모처럼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그림값을 깎은 게 마음에 걸린다. 화가는 지금도 춘천 소양로의 안개 속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찬찬히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을 찾고 달리느라 사라지는 것들을 눈여겨보지 못한다. 사라지는 것을 잡을 수는 없다. 다만 어느 가난한 화가의 붓끝에서 천천히 피어날 뿐이다. 그게 이 세상의 숨구멍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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