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태

춘천중앙감리교회 행정목사
2008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사람은 100명 중 18명이었습니다. 참으로 참담한 결과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모든 사람의 생각은 아닙니다. 여론조사일뿐입니다. 그러나, 18%라는 숫자는 교회의 목사로서 참 말하기 부끄러운 수치가 분명합니다. 개신교회의 신뢰도는 가톨릭, 불교 다음으로 여타 소종파를 빼고 나면 3위지만 꼴찌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개선하면 될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교회가 첫 번째로 바꾸어야 할 것으로 ‘교인과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일치’가 42%였습니다. 그런데, 언행일치는 여론조사해서 알 수 있는 답이 아니고 이미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언행일치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 삶입니다. 죽은 믿음이 아니고 산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알맹이가 있는 신앙입니다.

언행일치. 그것은 사람들이 말한 것 같지만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신합니다. 자신들이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하나님이 아버지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180도 다른 의견 차이를 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양측의 의견을 조정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을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 자식은 말이 자식이지 어떻게 자식이라 합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는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식이지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자식이 어떻게 자식입니까?

유대인들이 말하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한 사람입니다. 결코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 받을 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바로 그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혈통만 고집합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요한복음1:12-13에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 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혹시 여러분 계도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여자들이 지니고 다녔던 은장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내 대장부가 품고 다녔던 계도(戒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뜻을 정한 사내 대장부가 마음이 흔들리거나 유혹을 받아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가차없이 계도를 꺼내 보며 마음을 집중하고 유혹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옛날 지조 있는 사대부들은 그렇게 은장도나 계도를 품고 시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대쪽같은 성품을 가지고 꼿꼿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절이나 사내 대장부 큰 뜻이 밥 먹여 주냐?”면서 은장도로는 과일이나 깎아먹고, 계도는 지니고 다니지만 목적도 없이 대충대충 산다면, 그 사람을 계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삶으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 때 그 사람이 진정 믿음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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