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종국

기독감리회 동부연회 감독

(춘천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를 남겨줬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는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볼 수 있지만 자기가 무엇인가는 볼 수 없다”고 하였고 칼릴 지브란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예언자’에서 “자아란 한없고 헤아릴 수 없는 바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냐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에 출발점을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시작한다면 우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토기장이라고 비유했으며 우리는 진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흙입니다. 우리는 진흙이기에 늦가을 스산한 바람같이 바람이 일면 날리기도 하고 토기장이의 손에 들어가면 그릇이 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누구인지를 알기 전 그리고 또 때때로 우리가 진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생애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왜 나는 그 어떤 사람처럼 풍성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애쓰고 힘써도 그날이 그날일 뿐입니까? 더구나 주님을 믿으면 분명히 잘산다 했는데 나는 내 나름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는데 무엇 하나 시원하게 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진흙입니다. 우리는 토기장이에 의하여 그 의도대로 쓰임받기 위해 만들어 질 그릇으로 대기되어 있는 진흙입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뜻에 따라 쓰실 그릇으로 빚으신 것입니다.

축복의 사람 중에 손꼽히는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 깨져야 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인 죄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남의 가슴에 한을 심어준 것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20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그 앞에 목숨까지 잃을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얍복 강가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씨름을 합니다. 그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그에게 힘이 될 수 없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매달림은 목숨을 건 것이었습니다. 떼어 팽개쳐져서 더 시련의 세월을 겪게 할 처지가 못됨을 하나님은 알았습니다.

이제는 교활한 인간 야곱이 깨져야 할 시간이 다가 온 것입니다. 그는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쳤습니다. 야곱은 그 아픔을 참아냈습니다. 참아 내고 그에게 축복을 받아야 살겠기에 죽기 살기로 다리를 절면서도 그를 놓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을 이같이 귀중히 여기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걸식수도사 성 프란체스코가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했듯이 보배를 담은 축복받은 여러분은 주님의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저를 사용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날 보내소서” 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도에는 여러분이 새 일꾼이 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필요한 자리에 귀한 그릇으로 쓰여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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