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연

영동본부 취재부장
경포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하려는 강릉시의 고민이 깊다.

지난해 ‘공군전적비’가 철거되면서 생겨난 경포해수욕장 중앙 통로 앞 빈지에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게 강릉시의 계획이다. 올해 40억원의 예산도 확보해 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일 열린 경관위원회에서 달과 호수, 백조를 연상시키는 조형물과 분수공원 등으로 꾸며진 용역회사의 시안은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위원들은 경포가 갖는 상징성과 역사, 문화적인 인문자원 활용을 적극 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소위원회 구성을 통해 맨 처음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교수와 연구원, 용역회사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워크숍이 열리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마라톤 회의에서도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30여년간 경포해변의 백사장과 소나무숲속에 있던 낡은 건물을 헐어내고 소나무를 심는 일과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일은 차원이 달라 보인다.

낡은 것을 부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어렵기 마련이다. 추진 당시의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찬사를 이끌어 내기보다는 멀지 않은 미래에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가 되는 사례가 흔하다.

또한 경포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하려는 강릉시의 계획에 따르면 사거리 중앙에 위치한 교통섬인 사업 예정지로부터 100m도 안되는 거리에 고층의 호텔과 상가가 신축 또는 재건축될 전망이다. 변화를 앞 둔 상황에서 추진되는 경관 계획은 자칫 집을 완성하기도 전에 인테리어를 먼저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경포’는 오랜 자연과 문화가 숨쉬고 있는 공간이다. 그 자체로 강릉의 랜드마크이며 ‘경포대’, ‘경포호’, 호수 한가운데 ‘월파정’ 역시 랜드마크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갖추고 있다. 완전히 찢어발겨서 탈바꿈(TDR:Tear Down & Redesign)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웬만한 조형물은 이미 완성된 작품에 개칠(改漆)을 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시기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때다. 도시디자인이 온전한 ‘투자’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시기인 셈이다.

강릉시의 고민이 깊은 것도 이같은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가운데 ‘당초 계획대로 올 여름 해수욕장 개장 전까지 이 사업을 완료한다’는 강릉시의 방침이 다소 걱정스럽다. 아담한 꽃밭을 만들어 놓고 올 여름을 보내면서 고민을 계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조기집행’, ‘스피드 경영’, ‘밀어붙이기’ 등 속도전이 대세라고 해서 서둘러 결과를 내놓으려다 ‘제2의 공군전적비’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ypry@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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